우연히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EBS 다큐 <다큐프라임 - 저출생 보고서 - 인구에서 인간으로 1부 선택>을 봤다. 해당 영상의 유튜브 클립에는 '어쩌다 부모는 싫다' 요즘 애들이 결혼 안하는 이유'라는 제목이 달렸다. 저출산 문제로 국가의 위기론이 나오는 현 실태를 MZ 세대 입장에서 풀어낸 다큐였다. 청년들은 '어쩌다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며, 자신들 나름의 삶에 대한 비전, 꿈을 밝혔다. 그리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 게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라고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청년들이 그토록 기피하는 '어쩌다 부모'가 되어 버린 나는 그들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굳이 왜 이 길을 택하겠어...라고 동조했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고, 개성 넘치고, 자기 주관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나도 꿈에 있어서 열정이 넘치는 그들과 닮아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만큼은 절대값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론 27살에 결혼할 마음만큼은 추호도 없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압박에 못 이겨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던 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기존 세대의 관념에 오랜 기간 세뇌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커리어를 쌓아야겠다는 의지만큼은 투철했기 때문에 아이만큼은 결혼 후 한참 뒤에 낳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이른 나이에 어쩌다 부모가 된 건 계획에 없던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덜컥 찾아와서다.
어쩌가 부모가 되어 버린 나는 요즘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지'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등의 고민은 인생 어느 시기에서나 따라붙는다. 부모가 됐다고 해서 고민의 주제가 달라지지 않는다.
단, 고민들이 더 추가됐다.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까지 고심해야 했다. 당장 무엇을 먹여야 하나, 하는 가벼운 고민부터 이 아이들의 재능은 무엇일까, 어떤 교육을 시켜야할까, 라는 무거운 고민까지. 나, 남편, 아이 둘. 이것은 단순 1+1+2=4의 값보다 훨씬 더 큰 무게다.
그래서 사실 난 '어쩌다 부모'가 되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동시에 '어쩌다 부모'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계획을 해서 아이를 낳기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비싼 물가, 내 집 마련의 어려움, 짧은 출산 휴가 기간 등 일일이 따져가며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면, 아이를 낳아야 할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아이를 낳아야 할 이유보다 낳지 말아야 할 이유를 늘어놓는 게 더 쉽다. 계산기를 두드릴 수록 자녀계획은 인생의 뒷편으로 밀리고 만다.
나 역시 어쩌다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3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아이없이 남편과 둘이 살았을 확률이 높다. 여전히 내 인생을 잘 살아내기도 버거운데, 또 다른 생명체를 책임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두 아들 모두 계획없이 우리 부부에게 찾아왔고, 그랬기에 현재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부모로 살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누군가 나에게 선택권을 줬더라면, 과연 이 길을 택할 수 있었을까. 차마 '그렇다'는 대답이 손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면 두 아이를 힘껏 끌어안고 사랑한다, 고 속삭여줄 때다.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의 냄새를 맡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붕 떠 있던 감정이 슬며시 자리를 찾고 내려 앉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나를 지키러 하늘 나라에서 내려와 준 천사처럼 여겨진다. (물론 악마처럼 여겨질 때도 많다) 어쩌다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특별한 감정.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나의 꿈을 향해 지름길 보다는 느린 길을 걷게 됐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 덕분에 나그네가 되어 삶의 의미있는 풍경들을 음미하며, 목표 지점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