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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y 08. 2023

놀고 먹는 미국 어린이들

아이들이 쌔까맣게 탔다. 인종이 헷갈릴 정도로 얼굴이 시커메지다 보니, 최근 아이들을 보는 사람 마다 한마디씩 건넸다. 


"대체 무슨 일이...?" 


아이들이 이렇게 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매일 같이 캘리포니아의 땡볕 아래에서 수영을 5시간씩 하다보니 생긴 일이다. 수영장에만 들어가면 물과 한 몸이 되어 도통 나올 줄 모르는 아이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으니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 가족들과 휴가로 간 동남아 휴양지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칠줄 모르고 수영을 하다 살갗이 벗겨졌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면 수영장을 향했던 어린 나와 동생을 떠올리며, 두 아들의 수영장 사랑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매일 같이 수영장에 출근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건 우리 가족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 내에 야외수영장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던 야외 수영장. 처음 남편과 수영장을 구경하며, 이곳으로 이사오면 매일이 리조트에 사는 기분이겠구나 싶어 들떴다. 


수영장에 가면 동네 아이들을 죄다 만날 수 있다. 동네 아이들이란 같은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기도 하다. 단지 건너편에는 초등학교, 중학교가 있고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그 학교에 재학 중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동네 친구이자 학교 친구인 셈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형, 누나, 동생 다함께 수영장에서 깔깔 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에서의 생활이 아이들에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야 해서 하교 후 놀이터에 있는 어린이들은 얼마 없다고 들었다. (정말일까?) 살면서 학원 한 번 가본 적 없는 우리 두 아이가 한국에 가면 외계인같은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 살면 학원을 가야 한다, 는 으름장을 몇 번 준 적이 있어서인지 첫째 아들은 한국에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나도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운다면 지금처럼 수영장에만 풀어놓고 키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실 '아니다'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모든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길을 나혼자 외면할 자신은 없다. 


얼마 전 한국에 사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다 그녀의 아들과도 마주하게 됐는데,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이는 "미국은 매일이 어린이 날이라서 어린이 날이 따로 없다면서요 이모?" 하고 물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미국에 사는 어린이들은 매일이 어린이 날이나 다름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오늘도 두 아이는 수영장을 갔다. 주말인 만큼 예약해둔 슈퍼마리오 영화를 보여주고 외식까지 하고 왔건만 지칠 줄 모르는 두 아이는 수영장을 가겠다고 떼를 썼다. 수영장에서 3시간을 실컷 놀고난 다음 집에 와서 목욕을 하며 한 번 더 물놀이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기절하듯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래도 이 나이에는 노는 게 최고이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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