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Jul 20. 2024

여행지에서 렌터카가 사라졌다


어떡해. 차가 사라졌어.


전화기 너머 친구 B의 목소리가 다급하면서도 떨렸다. 20분동안이나 길가에 주차해뒀던 차를 찾았지만 차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 B와 나는 20분 전까지 말리부(Malibu) 해변가에 아이들과 함께 놀다가 막 헤어진 참이었다. 우린 각자 차를 몰고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운전을 하고 집에 거의 도착해가는 시점까지 B는 자신의 차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던 거였다. 당시 B는 6살, 4살된 두 아이와 함께였는데, 그들이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위에서 사라진 차를 찾으며 수십분동안 걸어다녔다고 상상하니 아찔했다.


"기다려. 내가 갈게."


하지만 난 전기차 충전을 해야했기 때문에 B에게 곧바로 갈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전날 충전을 하지 않고 잠든 탓에 차량 배터리가 말리부까지 왔다 갔다 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이럴 때 전기차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여행을 하거나 긴급 상황에서는 왕왕 불편해진다.


가까운 고속충전센터에서 차량을 충전하고 다시 말리부를 향하려는데, B에게서 전화가 왔다.


"C가 오기로 했어! 집에서 만나자!"


친구 C는 LA에 사는 또다른 친구로 우리 모두와 10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때마침 집에 있던 C가 B의 아찔한 소식을 듣고 바로 말리부로 가겠다고 했다. C는 나보다 더 빨리 B에게 갈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문제는 B의 렌터카가 대체 어디로 증발해버렸는가다. 그간 여행객이 차량 도난을 당한 사례를 수차례 기사로 써왔지만 내 친구의 사연이 될 줄이야. 어쩜 좋나. 이럴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말리부 지역을 관할하는 LA 카운티 셰리프국에 전화를 걸었다. 말리부 지역에서 스트릿 파킹을 했다가 차가 사라졌다고, 도난을 당한 것 같다고 말하자 상대방은 당황한 기색도 없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차가 견인된 것이니, 빨리 차를 찾으러 가라고.


견인(towing)?


주차위반 차량 중 랜덤하게 일부 차량이 견인되고는 하는데, 하필 B의 차량이 재수없게도 견인되고야만 것이다. 친구 B와 C에게 빨리 '말리부 하이스쿨'에 가서 견인된 차량을 찾아오라고 전했다. C가 곧바로 말리부로 출발해준 덕분에 그날 B는 무사히 차를 찾아올 수 있었다. 만일 이날 견인차량을 찾지 못했다면 하루 단위로 추가 비용이 붙었을 거라고 했다. 이날 B가 견인차량을 찾기 위해 낸 돈은 370달러. 수많은 주차위반 차량 중에 왜 하필 B의 차여야했을까? 말리부에는 늘 주차 자리가 부족해서 대부분이 길가에 주차를 해둔다. 나 또한 그날 B처럼 주차 금지 지역에 스트릿파킹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난 운 좋게도 차가 견인되지는 않았지만, 73달러 주차위반 티켓이 끊겼다.



집에 도착한 B는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B는 아이들 앞이라 꾹 참으려했지만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차량이 견인되었을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본인이 주차 위치를 헷갈렸나 싶어 수차례 도로 위를 오가며 차를 찾았다고고. 문제는 어린 아이들... 더운 날씨에서 차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엄마를 따라 위험천만한 도로 위를 걸어야 했던 두 아이들. 우린 B와 아이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온 점에 감사했다. 강도 당하듯 빼앗긴 370달러는 이번 여행의 액댐인 셈으로 치기로.



여행지에서 렌터카가 사라지다니. 역시 여행은 한치 앞도 예측 불가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니 불행했던 그 시간이 특별한 에피소드가 되어 우리를 웃음짓게 했다. 우린 그후로 어딜 가든 주차에 각별한 신경을 썼는데, B에게는 주차위반 요정이 따라다니는지 그 이후로도 B는 50달러의 주차위반 티켓이 끊겼다는 후문.

이전 05화 하루가 1부와 2부로 쪼개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