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Independence Day). 미국에 놀러 온 친구들과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자 우리 가족끼리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다. 바로 독립기념일 당일에 롱비치에 있는 퀸 메리호 여객선을 방문한 것. 퀸 메리호에서는 매년 독립기념일 마다 LA 근교에서 가장 화려한 불꽃놀이 축제를 연다. 어른 넷(미국에 사는 또다른 친구 포함), 아이 다섯에 총 418달러의 티켓 값을 지불하고 우리는 독립기념일 당일 롱비치를 향했다.
‘퀸 메리호’는 영국 조지 5세의 왕비 이름을 따서 지은 것으로 이 여객선은 1934년 건조돼 영국의 호화 여객선으로 명망을 떨쳤다. 퀸 메리호는 2차 대전 당시 수송선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여객선의 인기가 떨어지자 결국 1967년 12월9일 퀸 메리호는 운항이 중단됐고, 롱비치 해변에 영구 정박돼 현재는 여객선 내 호텔, 박물관, 레스토랑 등이 운영되고 있다. 영화 <타이타닉>이 인생 영화인 나는 10여년 전 남편과 연애시절 퀸 메리호에 방문해 ‘선데이 브런치’를 먹은 적이 있는데, 마치 영화 속에 들어간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기억이 난다. 퀸 메리호(길이 약 269m, 폭 약 28m)는 타이타닉호(길이 약 311m, 폭 약 36m) 보다도 규모가 더 큰 대형 여객선으로 인근에 산다면 한 번 쯤은 구경갈만 하다.
단, 독립기념일이나 새해전야와 같은 특별한 날에 퀸메리호를 가느냐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불꽃놀이를 구경하기 위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날이기 때문.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북쩍이는 곳에 간다는 건 예측불가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어 부모로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하는 일이다.
그러나 엄마들은 강했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여러 걱정들을 뒤로 하고 독림기념일에 퀸메리호에 가기로 했다.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행사 당일 오후 3시부터 배 안으로 입장이 가능했고, 불꽃놀이는 오후 9시에 시작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인파가 몰릴 것을 우려해 인근 한국 마켓에서 김밥을 사서 오후 12시까지 퀸메리호 주차장으로 갔다. 한산한 주차장. 우리처럼 일찍 온 사람들은 없었다. 우리는 배가 정박해 있는 곳에서 가까운 잔디에 돗자리를 펴고 나름의 피크닉을 즐기기로 했다. 엄마 셋, 이모 한 명(또다른 친구), 아이들 다섯. 합이 총 9명. 어딜가든 '단체'로 분류되는 우리는 돗자리 두개를 붙여 깔고 둥글게 둘러 앉아 마치 소풍을 온 사람들처럼 들떠 있었다.
이날의 피크닉에는 친구 C도 동참했다. 나와 친구 A, B, C는 10여년 전 LA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 처음 만났다. 모두 나이가 다른 우리들은 대학교 한인 학생회 활동을 하며 친밀해졌다. 우리는 학생회에서 각각 회장, 기획부장, 홍보부장 등을 도맡았을 정도로 학생회 활동에 열정이 넘쳤더랬다.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고, 신입생 환영회, 대학교 연합 행사 등을 준비하며 수많은 추억을 쌓았다.
유학생 신분이었던 우리 넷 모두 졸업과 동시에 바로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나와 친구 C는 운명처럼 다시 LA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 A, B가 이번 여름 미국에 와준 덕분에 우리 넷은 실로 오랜만에 다함께 뭉칠 수 있었다. 친구 C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아이 다섯명을 정성으로 돌보며 이모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싱글인 C의 소중한 휴일날 육아의 무게를 함께 지게 해 미안한 마음도 컸다. 그래도 모두 30대가 된 우리가 다시 옛날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C에 대한 미안함도 외면했다.
피크닉 시간까지는 딱 어른들이 계획했던대로 느긋한 시간들이 채워졌다.
김밥을 먹은 후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등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하며 저들끼리 낄낄댔고, 어른들은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 덕분에 무더운 날씨에도 서늘한 추위를 누릴 수 있었다. 우린 노닥거리다 잠이 오면 드러누워 달콤한 낮잠을 잤다.
오후 4시쯤, 이젠 배 안으로 들어가자는 의견에 모두가 동의했다. 불꽃놀이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참 남은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배 안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내는게 이곳까지 온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배 근처로 가자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티켓 큐알코드를 직원에게 보여주고 배 안으로 입장하는 순간부터 기가 빨리는 듯 하면서 온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마치 놀이동산에 간 것처럼 오늘 하루 힘든 일정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슬픈 예감을 틀리지 않았다. 퀸메리호는 독립기념일이라는 대목을 놓칠 수 없었는지, 이날 입장 총 인원을 제한하지 않고 최대치로 티켓을 팔은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도 어찌나 많던지. 물론 과거 공원으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구경갔을 때도 사람이 많긴 했다. 그런데 그건 공원이라는 뚫린 공간이었고, 퀸메리호는 아무리 대형여객선이라지만 막혀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북적이는 인파 속에 숨쉬기 어려웠다.
특히 가장 최악이었던 건 '키즈존'이었다. 아이들은 '페이스 페인팅'을 하겠다고 줄을 섰는데, 이날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분은 딱 한 명이었다. 한 명이 수십, 수백명의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줘야 했던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한 사람당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시간이 약 7~10분은 됐다. 그분의 그림 실력은 프로페셔널이었으나, 시간이 오래걸린다는 큰 단점이 있었다. 한 시간이나 줄을 섰는데도 우리 차례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 우리 앞으로 오더니 딱 우리 앞에까지만 그림을 마저 그리고 휴식시간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말도 안된다고,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제발 우리까지만 해달라고 간절하게 말하자 그녀는 못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우리까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겠다고 말하자 우리 뒤에 줄을 서있던 가족들도 난리가 났다. 결국 배의 매니저가 출동했고, 우리 뒤에 사람까지 페이스 페인팅을 해주는 걸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아이들은 2시간의 긴 기다림 끝에 그토록 원하던 페이스 페인팅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각각 상어, 하트 등이 새겨졌다.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 2시간이나 줄을 설 수 있는 아이들의 집념과 끈기에 어른들은 감탄했고, 동시에 지쳤다. 두 시간 동안이나 서서 줄을 서있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배 안은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9명인 우리 모두가 제대로 앉아있을 공간 마저 마땅치 않았다. 과연 우린 여기까지 누굴 위해 온 것일까 의문이 일었다.
어느덧 불꽃놀이 시작하는 시간이 다가와 우리는 배의 갑판으로 나갔다. DJ가 음악을 틀어주며 사람들의 흥을 한껏 올려주고 있는 중이었다. 10, 9, 8……..3, 2, 1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하늘 위에서 불꽃이 터졌다. 살면서 불꽃놀이를 꽤 많이 본 것 같은데, 퀸메리호에서 보는 불꽃은 색달랐다. 바로 눈 위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 ‘별빛이 내린다. 라라랄라랄랄라~’ 노래 구절을 자꾸만 되뇌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불꽃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동자도 반짝였다. 아이들은 이 순간을 기억해줄까?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좋다. 내가 평생 기억할테니. 소중한 친구들과 우리가 낳은 아이들이 다함께 미국에 모여 독립기념일 불꽃을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꿈처럼 아득하게 여겨진다. 우리 생에 이런 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친구 B와 마주보며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모든게 Worth it!”이라고 말했다.
하루종일 힘들고 고됐지만, 그 모든게 괜찮았다. 의미있는 모든 순간은 어쩌면 고난 끝에 오는 게 진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