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 이번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에 온 가장 큰 목적은 뭐니뭐니 해도 ‘썸머캠프’다. 한국인의 자녀교육에서 ‘영어’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특히 모국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어리면 어릴 수록 좋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중학생만 지나도 혀가 굳어서 새로운 언어를 온전히 이해하고 발음하기는 어려워진다. 친구들의 자녀 나이는 만으로 각각 8세, 6세, 4세로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기 좋은 시기다.
우린 다섯명의 아이들 모두 썸머캠프에 보내기로 했다. 각 집의 첫째들은 우리집 인근 사립 초등학교에서 진행하는 썸머캠프에, 둘째들은 미국의 유치원 개념인 프리스쿨(preschool)에 등록했다. 이미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 다니고 있던 학교, 유치원이었기 때문에 학교를 알아보고 등록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우리가 걱정했던 부분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내 두 아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영어실력이었다. 먼저 아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친구 A의 아들(만 8세)은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을 졸업한 후 국제학교에 재학 중인 상황으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게 더 익숙할 정도였다.
반면 친구 B의 두 아이(만 6세, 4세)는 현재까지 영어에 노출이 거의 되지 않은 상태였다. 두 아이는 한국에서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별도의 영어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 집에서 가끔 부모님과 함께 파닉스 공부를 하긴 하지만 영어로 듣고, 쓰고, 말하는 건 아예 불가했다. 때문에 썸머캠프를 보내기 앞서 친구 B의 고민이 가장 컸다.
“가서 하나도 못 알아듣고, 의사표현도 못할텐데…괜찮을까? 울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공식 썸머캠프를 가기 전에 적응도 할 겸, 첫째 남자아이들을 동네 코딩캠프에 보냈다. 셋이서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고 컴퓨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는 나머지 두 명이 막내 동생을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동네 코딩캠프 학원은 사무실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출근하는 길에 아이들을 맡기고, 회사가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이날 아이들은 오전 8시15분부터 오후 5시5분까지 긴 시간을 코딩캠프에서 보냈다.
아이들의 픽업을 위해 학원으로 들어가자 누가 온 지도 모르고 마인크래프트 삼매경에 빠진 형들과 달리 친구 B의 아들(만 6세)은 컴퓨터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게 바로 눈에 띄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컴퓨터를 왜 안하고 있냐고 물어보니, “하기 싫어서요”라고 답하는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루종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를 들으며 많이 외롭고 무서웠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나였어도 불어로 진행되는 학원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있어야 한다면 끔찍했을텐데, 6세 아이에게 참 가혹한 하루였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의 적응력은 어른보다 나았다. B의 아들은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형들과 함께 코딩캠프에 갔고, 3일째 되는 날 아침에는 빨리 캠프에 가서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싶다며 웃었다.
연습게임이었던 코딩캠프에서의 3일이 지나고, 그 다음주 월요일. 공식 썸머캠프의 첫날이 다가왔다.
친구 B를 포함해 친구 A까지 아침부터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오히려 당황했다. ”뭐가 긴장돼?“라고 묻자 친구들은 낯선 곳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학교를 가는 자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물론 설레는 마음 또한 동반된다고도.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함께 아이들의 등교를 해주지 못한 채, 친구들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회사로 향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다. 회사에 가서 나 또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은 캠프에 잘 갔을까?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오전 9시 반쯤이 되자 친구들이 실시간으로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담긴 사진을 보내줬다. 사진 속 아이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부모도 아이도 캠프 첫날에는 떨리긴 매한가지였다. 첫째 아들의 얼굴도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도 아닌 이모들과 함께 처음 가보는 썸머캠프에 가다니… 예민한 기질이 다분해 작년까지 학원 조차 다니지 못했던 아이었는데 지난 1년동안 너무 많이 성장한 것 같아 뿌듯했다.
오후 3시께, 친구들은 떨리는 마음을 안고 썸머캠프에 간 첫째들을 데리러 갔다.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답하는 아이들의 반응은 부모들의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영어를 못하는 B의 아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 나오는 모습이 감격스러웠다.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영어를 못해서 힘들긴 하지만 적응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공부를 배우기 보단 수영을 하고, 고카트 자동차를 운전하고, 영화를 보는 등 미국 썸머캠프는 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물론 학교마다 프로그램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보낸 캠프는 그랬다). 몸으로 노는 수업이 많은 덕분에 아이들이 언어 장벽을 크게 느끼지 않고, 스며들듯 캠프에 동화될 수 있었다.
유치원에 간 둘째들도 아침에 갈 때 울긴 하지만,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을 보면 늘 웃고 있다. 게다가 집에 와서는 유치원에 대한 걱정은 1도 없이 놀기 바쁜 걸 보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이번 썸머캠프를 계기로 한국에서 자녀들을 일반 어린이집을 보내는 친구 B는 첫째 아들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가서 늦었지만, 둘째 딸이라도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심히 고민 중이다. 영어 유치원에 대한 찬반 논란은 많지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언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좋은 것 같다.
아이들의 썸머캠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썸머캠프가 끝났을 때, 아이들이 아쉬워하고, 다음 해에도 또 썸머캠프에 오고 싶다는 긍정의 말을 하기를 기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