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친구들과의 미국에서 한달간의 동거는 우리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고 농도짙게 만들어줬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가족이 아닌 사람과 한 달 동안이나 그것도 본인들의 자녀를 데리고 함께 거주한다는게 보통 일은 아니다. 아무 때나 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우린 서로 싸울 수도 있다는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미국에서의 공동육아를 해보기로 했다.
우린 대학교 때 만난 사이로 지난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애, 결혼, 출산 등을 곁에서 지켜보며 서로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친구 A는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CC였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했는데, 나와 친구 B는 A의 모든 결혼 준비과정을 함께 했다. 모든게 처음이었던 만큼 함께 준비하는 결혼이 재밌기 그지 없었다. 마치 놀이같았달까. 우린 A의 스드메 결정을 함께 하고, 웨딩촬을 따라갔으며, 결혼식 당일에는 신부를 메이컵샵에서부터 따라다니며 일명 '가방순이' 역할도 도맡았다. 난 A가 던진 부케까지 받으며 계획에도 없던 결혼준비를 하게 됐다.
만일 그 시절 A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A의 결혼 준비를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더라면 B와 나는 아마도 결혼을 늦게 했을 거라고 상상하곤 했다. 특히 20대의 나는 결혼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결혼을 하고 싶다는 갈망을 느껴본적도 없었다. 그 시절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사귄지 1년이 지나자마자 결혼을 하자고 끈질기게 졸랐는데, A 덕분에 그의 소원이 이뤄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 나는 A의 결혼 준비를 도우며, '결혼이란 거 해볼까? 결혼한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는데?'라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친구 A-나-친구 B의 순으로 우린 줄줄이 소세지처럼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가지고 출산을 했다.
결혼, 임신, 출산을 비슷한 시기에 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묘하게 평행선을 이뤘다. 이번 여름 친구들과 미국에서 한달간 동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이들의 나이가 유사했다는 특징이 있다. 만일 아이들의 나이가 제각각이었더라면 우리가 함께 아이들을 썸머캠프에 보낼 계획을 짜긴 어려웠을 것이다.
돈독한 친구사이였으나 이번 여름처럼 한 달 내내 온전히 붙어서 생활한 건 처음있는 일이었다. 거기다 아이들도 함께였으니, 이번 동거생활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몰랐던 서로에 대해서도 알게될 기회를 얻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교육관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먼저 친구 A의 교육열은 우리 중 가장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녀의 아이는 현재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고,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닌다. 그녀는 대치동에서 어떤 학원이 좋은지, 각 학년별로 어떤 공부에 집중해야 되는지 등 교육에 대해 꿰고 있었다. A는 자신이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 자녀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다. 자녀 교육에 몰입하는 일은 그녀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A의 정성으로 큰 덕분인지 A의 아들은 성격도 좋고, 공부도 잘했다. A의 아이는 단체생활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자발적으로 책을 읽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A는 다른 대치동 엄마와 비교해서 자신의 교육열은 비교도 안된다고 했으나, 친구 B와 나에 비해서는 엄청 높은게 사실이었다. 함께 육아를 하는 순간에도 A는 한국에서 알고 지내는 학부모와 학원 설명회에 대한 정보를 논하기 위해 통화를 하곤 했는데, 세상에나...학원 설명회라니. 그럴 때마다 나와 친구 B는 어리둥절해졌다.
친구 B에게 물었다. "A와 같은 한국에 살고 있는게 맞아?"
자녀 교육에 있어서 친구 B는 A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유치원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A와 달리 B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첫째를 아직까지도 유치원이 아닌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그 소리를 듣고 놀란 우리가 "아니, 다 큰 애를 왜 어린이집에 보내?"라고 물으면 B는 태연한 표정으로 "편해서"라고 답할 뿐이었다.
B는 이번에 미국에 온 목적도 자녀의 교육 보다는 우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미국에 한 달 온다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다고 보는게 B의 입장이었다. B는 자녀에게 공부를 시키는 일 보다는 인성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B의 인성 교육은 우리 중 가장 철저하다고 볼 수 있는데, B는 두 자녀가 조금이라도 예의에 어긋나거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면 그곳이 어디든 간에 단호하게 혼냈다. B가 자녀에게 큰 소리로 혼내는 일은 동거 기간 중 꽤 자주 발생했는데, 그 때문인지 미국에 온 후부터 B의 목소리는 쭉 쉬어 있었다. B는 자녀를 키우며 자녀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할 때마다 자문을 구하기 위해 수시로 상담소를 찾았다. 프로 상담러인 그녀는 전문가에게 자녀 교육에 대한 코칭을 받고, 자녀에게 적절한 교육을 했다. 그 덕분에 B의 두 아이는 말도 예쁘게 하고, 예의도 바른 아이로 잘 크고 있다.
A와 B와 비교해 내 교육은 ‘자유방임’에 방점을 찍고 있다. 기본적으로 내 교육관은 ‘부모가 자식의 인생을 크게 바꿀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모는 자식의 지지자(supporter)로서 자식이 어긋난 곳으로 가지 않게 선을 긋거나 가지를 쳐주고, 곁에서 응원해주는 역할 정도를 해야 한다고 믿는다. 공부 또한 본인이 주체적으로 원할 때 해야하는 것으로 어릴 때는 ‘기본’에만 충실하자는 입장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태권도, 피아노, 수영 등 예체능 학원은 보내되, 공부를 위한 학원은 보내지 않고 있다.
나는 저학년때까지는 아이들과 최대한 많이 여행을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마침내 ‘꿈’을 찾길 바란다.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꿈만 찾을 수 있다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라고 생각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아이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는 전제 하에. 난 아이가 무엇이 되고 싶든 상관없다. 다만 반짝이는 눈만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동태 눈을 한 채 대충 인생을 사는 것만 아니면 분야가 무엇이 됐든 아이를 응원해줄 생각이다.
우리 셋은 각자의 다른 성격 만큼이나 교육관 또한 다르다. 교육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 게다가 아이마다 타고난 기질이 다르니 아이에 따라 교육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번에 A와 B의 정성스러운 교육을 눈 앞에서 지켜보며, 반성하거나 깨달은 부분도 많다. 지금까지 너무 ‘자유방임’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쓴 건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어쩌면 난 자유라는 보기 좋은 말로 위안을 삼으며, 자녀 교육으로부터 벗어나 편한 학부모의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몰랐다. 올해 8월부터 두 아이는 각각 초등학교 2학년, 킨더(*미국에서는 킨더부터 정규교육으로 여긴다)에 올라 가는 만큼 교육에 조금 더 관심을 쏟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