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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l 27. 2024

아이 다섯, 싸움을 안하는 날이 없네

미국에서 한 달간의 동거

미국에서 한달간의 동거생활을 앞두고 가장 우려했던 것은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의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었다. 우리들의 지난 10년이 넘는 우정 서사에 기반하면 우리들이 ‘싸움’까지야 가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의 싸움으로 인해 괜시레 서로의 마음이 상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서로 대놓고 말하진 않겠지만, 꿍한 마음을 서로에게 품게 될까봐 걱정이 됐다. A의 시어머님은 이번에 미국에 가면 나와 A의 사이가 끝이 날 수도 있다고 걱정하셨다고 하니, 우리들의 동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우려도 생각보다 컸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 셋, 아이 다섯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일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미국에 온 후 첫 일주일 동안 이상하리만큼 잘 놀았다. 서로 싸우긴 커녕 같이 협업해 놀기 바빴다. 아이들의 성별은 아들 넷, 딸 한 명. 만 4살 밖에 안된 친구 B의 딸은 오빠들하고 잘도 놀았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정원으로 뛰쳐 나갔다. 노는 방식은 매일 달랐다. 어느 날은 축구, 어느 날은 그네타기, 어느 날은 게임 등 아이들은 매일 기발한 방법으로 놀았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은 부엌 식탁에 앉아 “와 진짜 잘 논다”며 감탄했던 게 한 두번이 아니다. 아이들이 잘 놀아주니 우리의 동거생활은 순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동거생활이 둘째주에 접어들자 평화롭던 집안이 삐그덕하기 시작했다. 사이 좋게 놀던 아이들이 숨겨진 발톱을 서로에게 드러내며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싸움의 원인은 너무나 사소했지만, 싸움의 빈도는 잦았다. 누가 먼저 놀던 장난감이냐, 내 말이 맞냐 네 말이 맞냐, 엄마! 쟤가 먼저 날 괴롭혀요… 아이들의 싸움은 끈질기게도 이어졌다. 덩달아 친구 A, B의 고함소리도 커졌다. 각각 본인의 아이들을 통제하고 혼내느라 우리는 이 시기에 함께 있어도 마치 다른 섬에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대화할 틈이 없었다.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온 정신은 정원 또는 놀이방에 있는 아이들에게 쏠려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주시하느라 서로의 말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시기 친구 A는 급격히 지쳐갔다. A는 말했다. "솔직히 너무 힘들다"고. A는 우리 중 유일하게 외동 아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 외동 아이의 성격 마저 온순한 나머지 그녀는 평소 늘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왔다. 그녀의 집 분위기는 항시 고요하고. 차분했다고 하는데 아이 다섯이 복작대는 미국에서의 일상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 것이다.


상대적으로 아이 둘을 키우는 B와 나는 A 보다는 스트레스 지수가 낮았다. 특히 아들 둘을 키우는 나로서는 아이 다섯이서 복작이는 상황이 평소와 그닥 다를 것 없이 여겨졌다. 오히려 아들 둘만 있을 땐 형제간 싸움이 격하게 일어나는데, 지금은 손님이 와있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두 아들이 나름 선을 긋고 화를 조절하며 싸운다고 해야하나. 게다가 아이들이 저들끼리 놀기 바빠서 엄마인 내게 뭔가를 요구하거나 놀아 달라고 조르지 않아서 편한 부분도 있었다. A는 지쳤다고 했지만, 난 솔직히 그런대로 살만 했다.



아이들이 그나마 싸우지 않을 때는 수영을 할 때였는데, 수영장에만 들어가면 아이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두시간이고, 세시간이고 혼신의 힘을 다해 놀았다. 아이들이 수영하는 동안 엄마들은 선베드에 자리를 잡고 아이들이 물에 빠지지는 않나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됐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따라 들어가지 않아도 물 속에서 독립적으로 놀만큼 훌쩍 성장해 있었다.



아이들의 싸움을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우리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이면 무조건 단지 수영장을 향했다. 일단 우리 보다도 아이들이 수영장을 원했다. 학교 끝나고 집에만 오면 너나 할 것 없이 "오늘 수영장 갈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는게 루틴처럼 굳어졌다. 우린 보통 집에서 주먹밥, 볶음밥 등으로 아이들 저녁을 빨리 먹인 후 수영장으로 출발하거나 요리도 하기 싫은 날이면 수영장에서 피자를 시켜 먹었다. 아이들에게 수영과 피자는 무조건 한 세트처럼 여기지는지, 수영만 하면 우리에게 피자를 달라고 했다. 여하튼 수영만 가면 엄마들도 아이들도 나름 즐겁고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영 덕분에 한창 아이들이 싸우던 2주 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주 동안은 아이들도 곧 헤어짐이 닥칠지를 아는지 싸우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미국살이의 막바지에 돌입하자 아이들은 싸우기 보다는 서로 같이 노는 시간에 충실했다. 계속 놀고 싶어서 오후 10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질 정도였으니까. 어른들도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이들이 곧 헤어지는 사실이 짠한 마음에 오후 11시까지 노는 아이들을 애써 눈감아 주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아이 다섯명이서 각자 자신의 세계를 상대에게 열어주고, 그 세계에 서로가 침범하는 일은 실로 대단한 일이었다. 친구 A와 B, 우리는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제 친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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