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왜 착용하지 않을까
지난 주말, 아이 둘을 데리고 집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말리부(Malibu)’ 해변가에 다녀왔다. 워낙 집에만 갇혀있는 생활을 몇 달간 지속해오다 보니,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친화적인 장소를 찾아 떠난다. 코로나19 시국에 외출을 하기 위해선 자연과 물아일체 할 수 있는 곳이 최고다.
오랜만에 바다가 보고 싶어 말리부 비치를 찾았더니 세상에나. 이곳은 코로나19로부터 자유로운 지상 낙원인 듯 했다. 70~80%에 달하는 수많은 인파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해변가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바닷물 놀이에 신난 아이들도 많았다. 남편과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유자재로 떠돌아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을까!
이래서 그랬던 것이구나. 로컬 정부가 때때로 해변을 폐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난 7월4일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LA카운티, 오렌지 카운티 등의 로컬 정부는 일제히 해변을 폐쇄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연휴기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해변가를 찾을까 우려돼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뉴스 기사의 사진에 찍힌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었는데, 실제 해변가에 와보니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마스크 착용을 거부한다는 사실은 기사를 통해 이미 수없이 확인돼 왔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 전 세계 1위 국가. 코로나19 방역에 실패한 국가.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온갖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얻게 된 오늘날. 이 사태 속에서도 한편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달라고 주장하는 시위대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착용을 권하는 정부와 이에 반항하는 주민들의 모습은 어딘가 기이하다.
왜 미국인들을 이토록 마스크를 기피할까.
최근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 당국은 주민들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미착용 시 벌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이에 수많은 주민들은 공청회에 참석해 당국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마스크 착용 여부를 속옷 착용 여부에 비유하기도 하며 개인이 판단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주민들도 더러 있었다. 공중보건이 위협받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많은 미국인들이 공동체의 안전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욱 중요한 신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오랜 기간 마스크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범죄자들의 신분 위장용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일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마스크를 쓰는 일이 코로나19에 겁먹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로 과대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마스크 착용 여부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꾸준히 공식석상에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마스크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미국의 경제 정상화를 꾀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트럼프 지지자들도 정치적 신념을 앞세워 트럼프를 따라 마스크 착용을 거부해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코로나19가 빠르게 재확산하자 마스크 착용에 대한 긍정적 의견을 드러내며 태세를 전환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미국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 거부 원인에는 당국의 일관성 없는 마스크 관련 지침도 한몫했다. 앞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건강한 사람들의 경우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발표했다가 무증상 감염자들로 인한 확산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마스크 착용을 해야한다고 지침을 바꿨다. 오락가락하는 지침은 시민들로 하여금 신뢰감을 떨어뜨렸다.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들을 쭉 나열해 보았지만, 역시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문화 차이라고 해야할까.
전문가들은 동양의 집단 중심적인 사고가 코로나19 대응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동양인들은 공중 보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고 서로 도우며 집단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랬기에 한국은 사생활 침해 요소가 분명 있지만 공동의 안전을 위해 코로나19 확진자들의 동선 공개가 가능했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위기 속에서도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 침해당하는 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인종별로 구분해 놓은 통계 수치를 살펴보면, 아시안 확진자가 현저하게 낮은 비율을 보인다. 실제 내 주변 한국인들만 해도 마스크 착용은 말하나 마나 당연한 일이고, 장보는 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외출을 삼가하는 경향이 있다.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장은 코로나19 백신이 나온다 해도 영구적인 효과를 갖지는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날이 변이, 변종되고 있어 계절형 독감처럼 매년 백신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백신만 개발된다 해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장기전이다. 내년, 아니 내후년까지도 지금과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유를 막론하고 시민들은 스스로뿐만 아니라 타인의 안전을 배려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만 한다. 대체 마스크가 뭐라고 이러나. 마스크를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