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하프마라톤을 나가자는 친구의 제안에 덥석 오케이를 해버렸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지만 주기적으로 런닝머신을 하고 (걷거나, 빠르게 걷기 위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핫요가, PT를 꾸준히 즐겨온 사람으로서 하프 마라톤의 제안이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의 마라톤 도전이 화제가 된 이후, 대한민국 러너들이 즐비한 이 시대에 나도 기꺼이 러너가 되는 일에 동참해 보고 싶었다.
친구 두명과 함께 나가게 된 마라톤은 이름하여 '로즈보울 마라톤(Rose Bowl Marathon)'. LA 인근의 파사데나 지역을 달리는 이 마라톤은 곳곳에 높낮이가 있는 길이 있어 중상급 레벨의 코스로 여겨진다. 초보 러너들이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나가는 건 비추천 되는 코스다.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등록을 해두긴 했는데, 9월부터 12월까지의 시간이 빨라도 너무 빨리 흘렀다. 분명 열심히 사전 연습을 하고 싶었는데, 계획 보다는 미흡한 연습량이었다. 복기해보면 4개월 간 5K 달리기 총 4번, 8K 달리기 1번, 틈틈이 런닝머신 30분씩. 이렇게 달리는 연습을 했다.
10K를 달려본 적도 없는 주제에 하프 마라톤에 나간다는게 걱정스러워서 마라톤을 일주일 앞두고 런닝머신으로 10K를 달려봤다. 1시간 8분이 걸렸고, 죽을 것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정도면 해볼만 하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마라톤 하루 전 날. 함께 마라톤에 나가기로 한 친구들 카톡방이 불이 나게 울렸다. 긴장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게 맞는 건가...뭐 이런 내용들이었고, 카톡을 읽다 보니 스멀스멀 긴장감이 올라왔다. 불안 가득한 긴장감은 아니었고, 설렘이 동반된 긴장감이었다. 무언가에 도전한다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일단은 기분이 상쾌했다. 2026년 새해에 참가하는 마라톤이라 그런지 뭐랄까 이번 마라톤을 통해 올해 성공 여부의 향방이 판가름 날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달리다 보면 어떻게는 끝나기는 할테다. 마지막으로 오래 달려본 기억은 중학생 때.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당시 달렸던 거리는 5~7K 정도 되지 않았으려나 싶다. 체육시간에 선생님이 오래 달리기를 시켰고, 난 반에서 2등으로 달려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순발력에 있어서는 꼴찌에 가깝지만 지구력에서만큼은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류의 사람이란 걸 이때부터 깨달았다. 빠르진 않아도, 오래 꾸준히 하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왠지 이번 하프 마라톤 경기도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래도 한 번도 그토록 오래 달려본 적은 없으니 지난 일주일 동안 컨디션 조절을 했다. 컨디션 조절이라봐야 별것은 없고, 그저 휴식 취하기. 이제와서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부상을 입으면 아예 참가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차라리 쉬는 쪽을 택했다. 특히 전날에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목욕을 하며 몸을 노곤노곤하게 풀어줬다. 앞서 철인3종경기를 나간 경험이 있는 남편은 전날에 탄수화물을 많이 먹어둬야 저장된 에너지로 달릴 수 있다며, 저녁으로 파스타를 해줬다.
새벽 4시로 모닝콜을 맞춰두고 자정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일어나자 마자 준비해둔 옷을 입었다. 마음만큼은 프로인지라 러너를 위한 모자, 조끼, 운동화, 선글라스 등을 지난 몇 달 동안 구입해뒀다. 마치 풀착장을 준비하는 전현무가 된 듯한 느낌이라 거울 앞에 선 스스로의 모습이 좀 웃겼다. 남편도 4시30분에 일어나 무릎과 발목 부상을 대비해 테이핑을 해줬다. 남편의 따스한 배려와 지지를 느끼며 새벽 길을 나섰다.
오전 5시20분쯤 로즈보울에 도착했는데 주차장이 빽빽하게 막혔다. 오전 5시부터 트래픽이 있을 것이라던 주최 측의 공지가 과장은 아니었던 모양. 주차장에서 20분 동안 거북이 걸음 하다가 겨우 주차를 마치고 로즈보울 빌딩 앞에서 친구들과 만났다. 새벽 공기가 어찌나 서늘하던지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도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모여들자 추위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뿜어내는 온기가 따뜻했다. 이날 모인 인파는 약 1~2만명. 이 새벽에 모두가 달리기 위해 한 곳에 모였다니 뭔가 감동스러웠다. 태초에 인간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 했던 어느 책의 문구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십년째 달리는 인간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는 러너들의 로망인 보스턴 마라톤을 주기적으로 참가할 정도로 프로페셔널한 러너다. 그는 매일 달림으로써 꾸준히 글을 써낼 수 있다고 고백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해야지만이 좋아하는 일에도 몰입할 힘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나 역시 이번 계기를 통해 나만의 달리기 습관을 들이고 싶었다. 그래서 30대 중반, 주기적으로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싶었다.
파사데나 길거리를 뛰는데, 곳곳에서 추억들이 떠올랐다. 첫째 아들을 낳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던 파사데나의 인텔리젠시아 카페가 저 멀리 보였다. 산후조리 이모님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나홀로 다이어리와 책 한권을 들고 들렸던 카페. 그 시절 그곳에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만으로 스물 여섯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고, 내겐 '엄마'와 '나' 사이에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아직 엄마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혀 자각하지 못하던 시기였고,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카페가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 이후 저 카페를 다시 간 적은 없었으니, 카페와 8년만의 조우였다. 달리다 보니, 친구와 갔던 브런치 카페도 보였다. 날씨가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친구와 밀린 수다를 떨고, 카페를 나와 깔깔 거리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줬던 기억.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추억들을 곱씹으며 달리는 기분이 가히 끝내줬다. 이게 말로만 듣던 '러너스 하이'일까? 이대로라면 얼마든지 더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날 챗GPT와 하프 마라톤 전략을 함께 짰다. 전략은 이렇다. 첫 10K를 뛰는 동안은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나' 싶을 만큼 천천히 뛰기. 그러가 점차 속도를 올리고, 15K가 넘으면 그 때서부터 본래의 페이스로 뛰기. 너무 처음부터 에너지를 다 써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긴 호흡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필히 초반부터 페이스 조절이 필수인 것이다.
천천히 달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달리면서 4K 마다 먹은 에너지 젤리 덕분이었는지 10K까지는 힘들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달릴만 한데?'란 생각이 들었다. 11K쯤 뛸 때쯤, 저 멀리 남편과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쳤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들을 지나쳤고, 가족들의 응원 덕에 갑자기 힘이 솟았다. 마라톤을 하며 받는 응원은 진짜 큰 힘이 된다. 가족뿐 아니라 길거리에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응원도 그렇게나 힘이 됐다.
15K 지나고, 18K쯤 되자 그만 뛰고 싶었다. 숨이 가빠지는 게 느꼈고, 자꾸만 걷고 싶은 갈망이 올라왔다. 하지만 '끝까지 걷지는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물을 마실 때를 제외하곤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20K쯤 지나 거의 끝에 도달하자, 멈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커졌다. 저멀리 결승선이 보였고, 조금만...조금만 더 라는 마음으로 뛰다 보니, 드디어 결승선에 도착했다.
2시간26분.
인생 첫 하프 마라톤은 이렇게 끝이 났다.
친구들도 잇따라 들어왔고, 우리 셋 모두 이날 완주할 수 있었다. 완주만으로도 기뻤는데, 우리 셋 모두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기록으로 하프 마라톤을 마칠 수 있어서 더욱 뿌듯했다. 기념 사진을 왕창 찍고, 기다리던 가족들과도 만났다.
처음엔 완주 성공 때문에 기뻐서 몰랐는데, 점차 다리가 욱씬거리고 후들거렸다. 걷기가 힘들었고, 허리도 아팠다. 집에 오자 마자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니 이제야 하프 마라톤이 무사히 끝났다는게 실감이 났다. 그리고 다음에 또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마라톤에 중독되는 건가... 꾸준히 마라톤을 해야겠다. 그리고 40이 되기 전에 혹은 40을 기념해서 풀마라톤에도 도전해봐야겠다.
마라톤이 매력적인 이유? 끝난 후의 성취감이 달디 달다.
그리고 따라오는 건강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