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시아버님의 기일이 다가왔다.
음력으로 날짜를 따져 제사를 지내는지라 한해가 바뀌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게 시아버지의 기일 날짜 확인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친할머니의 기일과 시아버지의 기일이 딱 이틀 차이라서, 한국에서 제사 지내는 엄마 소식을 들으면 '아, 나도 시아버지 제사를 지낼 날이 다가왔구나' 자연스레 알게된다.
사실 제사를 지낸다고 말하면 거창하게 들린다. 솔직히 미국에서 우리집 말고 제사 지내는 집을 본 적이 없다. 많은 한인들이 교회를 다녀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세월의 흐름 속에 제사라는 한국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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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장손 며느리의 제사상 차리기
<미국에 사는 장손 며느리의 제사상 차리기> 글을 몇 년 전에도 썼었다. 내 브런치 글 중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그 글에는 여러 칭찬 댓글도 달렸지만, 이런 댓글도 있었다.
남편이란 분 좀 고지식하시네요. 미국에서 무슨 제사래요?
코미디 보는 거 같네요. 요즘같은 시대에 제삿상을 차리자는 자체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거
날이 서있는 댓글이었지만,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나 역시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제사상 차리는 일이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혼한 내 친구들을 보면 그 누구도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보통 산소에 가거나 화장터에 가서 고인을 기리고,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문화는 거의 사라졌다.
남편과 제사 상차림을 준비하며 이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우리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제사를 지냈을까? 아마 우리도 아버님 산소에 방문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아마 우리 가족이 한국에 살았더라면, 다른 가족들과 함께 아버님 산소를 찾았으리라. 아쉽게도 우린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제사를 지내는 방식으로나마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신 아버님을 기린다. 두 아이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를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한인 마켓이 있으므로 대략적인 제사 음식은 구할 수 있었지만, 북어포는 구할 수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북어포를 팔았던 것 같은데, 올해는 북어포가 아예 마켓에 없었다.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제사 음식들을 최대한 샀지만, 사실 제대로 된 제사상이라기엔 부족하다. 그래도 제사를 지내는 마음이 중요하겠거니, 하며 기본적인 구색은 맞췄다.
남편이나 나나 제사 지내는 방식은 제대로 몰라서,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제사를 지냈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맛있게 드세요"라고 한 마디씩 하며 절을 했고, 제사 막바지에는 소원도 빌었다. 제사 내내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님의 살아 생전의 모습을 아이패드 화면 위에 띄웠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살아계셨다면 분명 많은 사랑을 주셨을 것 같다.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여의고 외로웠을 남편의 옆모습을 바라본다. 이제는 그토록 꿈꾸던 온전한 가족을 꾸렸으니, 부디 별탈없이 쭉 평온할 수 있기를.
제사를 지내고 한국에 계신 가족 어른들께 소식을 알렸다. "복 받을 거다"라는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구시대 유물이건 뭐건, 제사를 마치고 나니 나도 남편도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어쩌면 제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편하기 위해, 고인을 그리워 하는 의식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