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is Seok Jan 15. 2021

번아웃이 올 땐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팬데믹 속 당신의 정신 건강은 안녕하신가요


아무 것도 하기 싫다...아무 것도.

그저 누워서 쉬고 싶다. 일도, 육아도 잠시 쉬고 싶다.


2021년 새해가 밝은지 고작 열흘이 지났다. 코로나19로 점철된 지난 한 해를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한 해가 찾아왔음에도 이번 해는 새해부터 영 개운하지 않았다.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여전히 그 맹렬한 기세를 떨치고 있었고, 내가 살고 있는 LA 카운티에서는 매 6분에 1명 꼴로 사망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해 비교적 맑았던 내 정신상태는 오히려 2021년이 되고 조금씩 한계를 마주하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난 어딘가 모르게 불안정하고, 답답했다.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의욕이 바닥난 상태였다. 번아웃(burnout)*이었다.

*번아웃 증후군: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한 가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이로 인해 무기력증, 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상


아무래도 지속되는 팬데믹 상황에 2020년은 어떻게든 버텼지만, 2021년에는 버틸 힘이 바닥난 듯 했다. 2020년에는 처음 겪어 보는 기이한 상황에 뉴노멀 일상을 받아들이는 '새로움'과 '적응'의 시간으로 그런대로 괜찮은 나날들을 보냈다면, 2021년은 그 어떤 것도 새롭지 않았다. 그저 지난 해와 복사-붙여넣기와 같은 시간들의 연속. 나아질 상황은 없는 것만 같았다.


캘리포니아의 겨울은 한국과 비교해 따뜻하지만 이곳에 살다보면 영상 5~10도의 기온 마저도 영하 날씨 마냥 춥게 느껴졌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난 한껏 몸을 웅크리고, 이불 밖의 세상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충동과 싸워야했다. 일과 육아로부터 벗어나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정신건강과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아이들에게 날로 짜증만 늘어가고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할 때 사람은 짜증이 나지 않던가. 그 어떤 것보다도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육아. 내가 이렇게나 피곤한데 일을 끝낸 후 제대로 된 퇴근을 하지 못하고 육아로 출근을 해야 하다니. 두 아이의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또 다른 출근길... 한숨이 새어나왔고, 이렇게는 오래 버틸 수 없겠다는 비상 신호음이 머리 속에 울려 퍼졌다.


삐삐삐...


더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겠다는 마음의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깊은 우울감을 느낀 후, 나는 내가 살 길을 모색해야 했다. 평소 긍정의 힘을 믿으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우울감을 느끼는 요즘의 내가 더욱 낯설고 힘들었다. 과거의 나는 어떻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던 거지? 내 마음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미라클모닝'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지난 해 4월부터 10월까지 반년 동안 행했던 '미라클모닝.'


'미라클모닝'이라는 타이틀처럼 실제 루틴이 거창하지는 않았다. 그저 새벽 5시에 일어나 요가로 하루의 시작을 열고, 따뜻한 티를 마시며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렇게 '미라클모닝' 루틴을 지키며 살았던 지난 반 년간 나의 정신건강은 그 어느때보다도 안녕했다. 그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 시기의 나는 하루하루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소확행을 누리며 재택근무와 육아를 소화해냈다. 지금의 나와 그때 내가 처해진 상황은 달라진 것 하나 없는데 (주택으로 이사를 했으니 굳이 셈하자면 더 좋아진 상황일테다) 우울감을 느끼는 걸 보면 변해버린 마음이 문제였다.


마음의 비상신호를 들은 이상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했고, 바로 그 다음날부터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의 2달 만에 새벽 5시에 일어나보니 내가 왜 이 시간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문득 깨달았다. 겨울잠에 취해 잠시 잊고 있던 충만한 기운.


집 안의 모두가 잠든 시간. 나 홀로 그 새벽의 문을 열고, 모든 정신의 집중을 나의 내면에 귀 기울이면 '진짜 나'와 마주볼 수 있게 된다.


'너...혼자 만의 시간이 이렇게나 간절했구나.'




책을 읽고, 티를 마시고, 일기를 썼는데도 아직 새벽 6시였다. 내가 하고싶은 일들을 거의 다 했는데도 여전히 내 자유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제 밤 우울했던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진 것만 같았다. 나는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개운함을 되찾았다. 요플레를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텅 비어있는 요플레 칸. 요플레를 사러가야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이른 시간에도 문을 열고 있는 인근 랄프스(Ralphs) 마켓을 향했다.

해가 떠올라 불그스름했던 하늘. 물감으로 그려놓은 듯 어여뻤다. 모닝 팝송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 기분이 너무도 상쾌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실로 오랜만에 혼자 하는 외출. 재택근무, 육아로 인해 혼자 집 밖을 나온 게 얼마만인지. 요즘들어 아들은 내게 집착하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화장실에 간 순간 마저도 '엄마 어디있어' 하며 나를 찾기 시작하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아이가 나를 찾는 소리에 숨이 턱 막힐 듯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다.


일찍 일어나 새벽시간을 홀로 즐기고 있노라니 며칠간 나의 온 마음을 침범하고 잠식했던 우울감이 증발한 듯 했다. 혼자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생각을 다듬고, 시장을 보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 일상적인 과정에서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내 마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다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의지와 희망이 샘 솟았다.


결혼 전, 아니 아이를 낳기 전만에도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혼자있으면 심심하고, 놀러나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워킹맘으로 살며 혼자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치닫다 보니 사람에게는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게 됐다.


지친 나를 돌보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뿐이 없다. 물론 가족, 친구들의 보살핌이야 도움이 되지만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만큼 가장 강력한 치료제는 없다. 혼자 고요한 시간을 보내며 내 인생을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추게 되면, 나를 둘러싸고 있던 소소한 고민들로부터 '괜찮아'하는 토닥임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된다.


나를 사랑하고 다시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친 하루의 끝에 목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