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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17. 2021

엄마 역할에는 휴가가 없나요

휴일 없는 휴일

실로 오랜만에 쉬는 날을 맞이했다. 이사 후 쉼 없이 지난 6주간 재택근무와 육아를 하며 숨 막히게 바쁜 나날을 지내다 맞이하는 모처럼의 쉬는 날이었다. 것도 월요일의 휴식시간. 모두가 바쁘게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난 느긋하게 늦잠을 자다 오전 9시쯤 눈을 떠 알렉사에게 '모닝 재즈'를 틀어달라고 했다. 알렉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랜덤한 재즈 음악을 들으며 침대 안에서 딩굴거리며 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 어딘가 어색했고,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게 뭐라고, 얼마만에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된 걸까.


고맙게도 전 날 늦게 잔 아들은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주었다. 그 이야기인 즉슨 내게 달콤한 오전의 여유시간이 1시간 주어졌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부랴부랴 일어나서 아들의 아침을 챙기고, 오전까지 해야하는 할 일을 하느라 눈곱도 떼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 앉아 뉴스를 보고, 타자를 두드리곤 했던 불과 며칠 전까지의 내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아침을 챙겨먹을 시간이었지만 침대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 젖은 스폰지 마냥 몸이 축 쳐졌달까. 침대 옆 선반에 올려둔 책을 읽으며 내게 주어진 여유시간을 한껏 만끽했다. 오전 10시 무렵이 되자 아들이 잠에서 깨어나 내 방으로 왔다. 아들과 함께 사이좋게 미국식 아침을 차려먹었다. 아일랜드 테이블 의자에 아들은 앉아있고, 난 에어프라이어로 구운 크루아상과 계란후라이, 시리얼을 아들에게 건넸다. 부엌에서도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느긋한 오전시간을 즐겼다.



끝나지 않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1년째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오랜만에 일하지 않는 엄마답게 제대로 된 홈스쿨링을 해주고 싶어 그동안 잔뜩 구매만 해두었던 문제집을 꺼내왔다. 한글, 알파벳 쓰기, 창의력 수학 등. 고작 만 4살 된 아이를 대상으로 이 세상은 수많은 문제집을 선보였다. 아들과 나란히 식탁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킥킥 대다가 온라인 홈스쿨 웹사이트에 들어가 게임인지 공부인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을 약 한시간 동안 둘러봤다.


홈스쿨링이란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일만 하는 엄마이다 보니 육아와 교육에는 영 젬병이다. 그래도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좋은 엄마가 된 것만 같아 뿌듯해졌다.  



휴가에 대한 행복했던 기억은 여기까지다.


쉬는 주간. 월요일 오전 시간 이후 나는 이유 모를 불만에 휩싸였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모락모락 피어 올라오는 불만의 종류를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일을 하지 않는 하루를 어떤 방식으로 알차게 채워 나가야 할 지 난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었다.


쉬는 주간이 오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는데, 막상 쉬는 날에는 하고싶었던 'to do list'를 전혀 하고 있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가사와 육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세 지나갔고, 난 허무해졌다. 그리고 이윽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휴가란 말이야? 나는 조금 더 특별한 휴가이길 바랐는데!
 

마치 이런 느낌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에는 캐롤을 들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막상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전혀 특별한 날을 보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느끼는 우울과 허무함. 오히려 특별한 날을 기다리는 여러 날들보다 기념일 당일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서 그런 걸까.


그런 실망스러운 감정이 이번 휴가 기간 내내 지속됐다. 새해에 쏟아지는 가사와 일들을 이 휴가만 기다리며 애써 잘 견뎌왔는데, 막상 휴가가 시작되고 나니 난 속편히 쉴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자각했다. 난 무인도에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여전히 집안 가사일과 육아에 얽매여 있으니까. 휴가라고 해서 자유의 몸을 뜻하는 건 아닌데, 휴가를 기다리며 크게 착각해왔던 모양이다. 일만 하지 않으면 '난 자유로울 수 있어'라는 거대한 착각.


직장인에게 휴가는 금쪽같은 시간이지만, 코로나 시기에는 집콕 휴가이기 때문에 과거의 휴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마음을 고쳐 먹어야 했다. 호캉스도 여행도 불가능한 이 시기에 집에서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고서야 휴가 기간 내내 불만을 토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휴가라고 해서 특별할 필요는 없다, 고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셈인데, 어차피 회사 일만 하지 않을 뿐 나의 또다른 직업이나 마찬가지인 '엄마' 역할은 현재 휴가 상태가 아니니까. 투잡을 뛰다가 한 가지 역할에만 충실하면 되는 상황이 된 것일뿐, 내 인생에 휴가가 주어졌다는 착각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상책이다.



엄마 역할에는 휴가가 없다.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휴가는 내게 '워킹맘'에서 잠시 '전업맘'삶을 부여해줬을 뿐이다. 전업맘의 삶은 워킹맘 못지 않게 힘들다. 워킹맘은 어찌보면 일에 정신과 육체가 매여있기 때문에 가사와 육아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반면 전업맘은 가사와 육아를  해내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같다.  그대로 가사와 육아가  직업이 되는 것인데, 적성에 맞든 맞지 않든 해내야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힘들다.



'엄마'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토닥여 주고 싶다. 우리 잘하고 있잖아요. 조금만 더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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