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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Feb 24. 2021

코로나 시국 여행지에 사는 일

라라랜드 with 코로나19 

여행을 못한다면 일상을 여행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여행이 불가능해진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 중 일부는 '일상을 여행처럼 살자'는 다짐을 되새기며 이 시기의 무료함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 내가 그렇다. 코로나19 시기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아이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었던 내게 여행은 선택 불가능한 옵션이었고,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여기 이곳에서 마치 여행자처럼 살아보기로 마음먹었었다. 그건 내가 유일하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했다. 


지난 1년간 코로나19 시기를 살아가며, 내가 살고 있는 여기 LA가 얼마나 축복받은 장소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한 시간 이내에 위치한 말리부, 산타모니카, 베니스비치, 롱비치 등등의 바다들만 가도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며 여행자의 감정을 잠시나마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이 얼마나 꿈같은 일인지. 


게다가 바다는 넓다. 


그 이야기인 즉슨 바다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으로부터 조금은 더 안전하다는 뜻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인 이 시대에 바닷가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주말이면 바다를 향하곤 한다. 다르게 말하면 LA 인근에서 바다 이외에 안전한 곳은 별로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전히 LA에서 식당들의 실내 영업은 불가능하고, 오로지 야외영업만 가능하다. 테라스가 있는 곳에서만 외식이 가능한 셈인데, 바다에는 테라스 식당이 많은데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켜지기도 쉬우니 바다를 향하는 이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지난 글 '매주 금요일엔 바다에 갑니다'(https://brunch.co.kr/@ummi/41)에 썼듯이 2021년의 나는 여전히 금요일이면 바다를 향한다. 일주일간 집콕생활을 하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서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바다에 가야했다. 




최근에는 '베니스 비치'를 다녀왔다. LA 인근 바다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고유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베니스 비치'는 예술인들의 집합소 같은 정체성을 드러낸다. 세상 '힙한 곳'이라고 하면 적합할까. 

우선 베니스 비치를 향하는 날이면 바로 바닷가를 향하지 않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애봇키니(Abbot Kinney)'로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한다. '애봇키니' 메인도로는 상점, 레스토랑, 미술관 등이 일렬로 쭉 늘어선 1마일 길이의 도로로 예술가들의 현지 상품도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다. 과거 남편과 데이트하던 시절 처음으로 '애봇키니'에 와보곤 입이 쩍 벌어졌더랬다. "세상에 LA에서 제일 좋다 여기!"

이날 처음 애봇키니에 방문한 친구는 한국의 가로수길 같다며 반가워했다. 이곳은 가로수길과 홍대 거리 중간 사이쯤 되는 느낌을 마구 풍겨낸다. 곳곳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현지 예술가들의 상점에 들려 작품 및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다 보면 반나절이 절로 흘러간다. 코로나 시기에도 주말에는 사람으로 붐비는 편이지만 평일에는 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아 돌아다니는데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애봇키니를 설렁설렁 걸어다니며 여유를 만끽하다 다음 목적지는 '베니스 운하'다. 애봇키니 거리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지난 1905년 개발자 '애봇키니'가 이탈리아 도시 베니스를 본따 인공적으로 지은 습지 운하인데, 이탈리아의 베니스 못지 않은 풍경을 자랑한다. 

아기자기한 '베니스 운하' 주변으로는 주택가가 형성돼 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사람이 사는 일은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래도 테라스에서 운하가 보이고 고즈넉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은 분명 나와는 DNA부터 다를 것 같다는 막연한 상상을 하며 걸었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애초부터 미국에서 태어난 이들에 대한 동경을 품었다. 내가 평생 가지지 못할 자유로운 사고를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아무리 미국에서 거주하며 공부를 하고 직장생활을 해도 평생토록 한국인스러운 사고와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는 두려움은 여전히 나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그랬기에 베니스 운하와 해변가를 걸으며, 언젠가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서 최소 일주일간은 에어비앤비로 집을 빌려 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상 속 미래의 나는 바닷가에 위치한 집에서 눈을 떠 가족들과 여유롭게 밥을 해먹은 후, 서핑을 하러 바다로 나간다. 하염없이 모래사장 위에서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며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는 삶. 근심, 걱정없이 자유와 평화로만 채워진 삶을 일생에서 '일주일' 쯤은 보내볼 수 있을까? 그건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왠지 베니스 비치에서라면 가능할 것 같아서 괜스레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피어 올랐다. 



코로나19 시기에 여행지인 '라라랜드'에 사는 일은 일상이 여행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장거리 운전을 하지 않고도 자동차로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여행지가 수없이 많으니까. 


물론 일상은 여기서도 별다를 것 없이 똑같다. 일을 하고 육아를 하고 하루하루 살아 내기도 버거운 나날들. 


하지만 어디에 살든, 지금이 어떤 시기이든 일상을 여행처럼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 모두 현실에서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여기를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만 갖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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