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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r 12. 2021

어쩌다 보니 워킹 홈스쿨맘(워킹맘+홈스쿨)

아이가 1년간 유치원에 가지 않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20년 3월11일. 세계보건기구 WHO는 코로나19의 팬데믹을 공식 선언했다. 1968년 홍콩 조류독감, 2009년 멕시코 신종 인플루엔자에 이은 세번째 팬데믹 선언이었다. 딱 그쯤부터 아들은 유치원에 나가지 않았다. 내 재택근무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들과 찐하디 찐한 1년을 함께 보낸 나는 어쩌다 보니 '홈스쿨맘'이 됐다.


사실 말이 '홈스쿨맘'일 뿐이지 나는 그 단어에 딱히 어울리는 엄마는 아니다. 홈스쿨을 한다하면 대개 아이의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이끌어 내며 집에서도 훌륭한 교육을 하는 소신있는 교육방식을 언뜻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질 좋은 교육을 자녀와 해나가는 홈스쿨맘들도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할 것이다. 과거 한 다큐멘터리에서 시간표를 짜서 자녀에게 학교 못지 않은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는 홈스쿨맘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나는 상황에 떠밀려 의도치 않게 홈스쿨맘이 된 케이스다 보니,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는 공통점 말고는 전형적인 홈스쿨맘의 궤도에서는 이탈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재택근무로 풀타임 일을 하고 있다보니 사실 아이의 교육을 전담할 처지도 못되는 상황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직 만 4살인 아이의 교육에는 큰 열정이 없다고 해야하나. 이를테면 남편과 나는 이런 말을 믿는 사람이다. '될 놈 될(될 놈은 된다).'


내 아들이 될 놈인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저 말을 믿는다는 건 될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해내고, 안될 사람은 아무리 인풋을 넣어도 아웃풋이 기대만큼 안 나올 것이기 때문에 교육에 있어서 큰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런 내가 코로나19라는 1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하는 전염병으로 인해 홈스쿨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최근 '과연 이래도 되나?'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건 꽤나 영리한 줄 알았던 아들이 몇 달째 알파벳 쓰기에서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였다. 이 나이에 이 정도밖에 못 하는게 일반적인가? 왜 이걸 못 외우는 거지? 비교치가 없으니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지 못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녀석이 알파벳과 파닉스를 제대로 익히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들의 TV 시청 시간도 문제였다. 내가 집중해서 일을 하기 위해선 아들이 나를 찾아서는 안됐고, 그랬기에 TV 말고는 아들의 주의를 끌 별다른 묘수가 딱히 없었다. 적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TV 없는 세상에서 키우고 싶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내 교육관이 무너졌다. 만 2세까지 미디어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아들은 코로나19가 터진 이후 갑자기 접한 TV 세상에 깊게 빠져 들었고, 늘 약속시간 보다 더 많이 TV를 시청하기 위해 징징댔다.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하는 도중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는데. 본인이 스스로 공부를 좋아할 때까지 다른 재미난 놀이거리들을 제공해주며,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엄마이고 싶었는데. 이번 생은 그런 엄마가 되긴 틀렸구나, 싶어 '망했다'는 좌절감이 들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갑작스럽게 미국에 가서 살자던 남편의 제안에 '예스'라고 답해버린 건 어쩌면 한국식 교육에 대한 반발심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곧 태어날 아이에게 내가 받았던, 그리고 지금은 강도가 더 세져버린 한국식 교육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난 아이의 교육을 위해 내 커리어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엄마 사람이다. 자녀의 교육과 여성의 커리어가 양자택일의 선택지처럼 놓이는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한 후,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렴"이라는 말은 건네는 엄마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열심히 공부를 했지만, 결국은 꿈을 이루지 못한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는 건 모순적인 일처럼 여겨졌다. 


커리어와 자녀의 교육 두 마리의 토끼를 어쩌면 모두 잡을 수도 있을지 모를 곳이 '미국'이었기 때문에 난 미국으로 왔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변수로 재택근무와 홈스쿨링을 병행하게 돼 난 큰 함정에 빠졌다. 내 아이는 1년째 유치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백수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한국에 사는 친구들의 자녀는 여전히 유치원에 다니며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SNS 덕에 알 수 있다). 이러니 때때로 자괴감이 든다. 교육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될 놈 될'이라는 교육 가치관의 기저에는 이런 생각들도 깔려있다. 결국은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겠지만, 한 사람이 가진 잠재력의 몇 퍼센트를 사용하고 살아가느냐가 문제라고. 


그래서 부모는 자식의 교육에 인생을 걸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역할은 해야한다는 믿음이 있다. 부모가 자식의 교육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아이가 타고난 기질을 극복해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게 아니라, 타고난 잠재력의 적어도 70~80% 이상은 사용해서 살아가길 바라기 위함이 아닐까.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상반기 내로 전 국민의 백신 접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지금. 조금만 더 견디면 홈스쿨맘의 라이프도 끝날 것이다. 그 전에 마음을 부여잡고, 아이의 교육에 더 힘써 보자는 마음을 먹는다. 일한다, 피곤하다, 그런 핑계로 내 아이의 잠재력을 짓누르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새벽같이 일어나 오전 근무를 미리 끝내놓고, 오전 시간에 적어도 1~2시간은 아이와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한다. '공부'라 칭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아이와 함께 공부하는 습관을 쌓아나가고 있다. 


오히려 이런 특수 상황 덕분(이라고 해야할지)에 아이와 1년간 꼭 붙어 있으며 상상도 못했던 '홈스쿨맘' 라이프를 살아가는 오늘날, 이 시간들을 기회로 여기기로 마음 먹는다. 최근 홈스쿨 관련 서적도 몇 권 주문하기도 했다. 


이 때가 아니면 언제 홈스쿨링을 해보겠는가? 결과에 집중하지 말고, 홈스쿨링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 집중하면 요즘의 나날들이 소중해진다. 공부를 못하든 말든, 아이가 이 시기를 엄마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들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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