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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Mar 06. 2021

타향살이의 소확행=한국으로부터 온 소포

한국 소포 받는 재미

타향살이 햇수가 올해로 몇년 차가 되었을까. 이십대부터 삼십대에 이르기까지, 학생이었던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 되기까지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미국에서 살게될 줄이야. 대학만 졸업하면 바로 한국에 들어가 '영영' 한국에서 엄마 아빠 곁에 살려고 마음 먹었던 과거의 내 다짐이 무색하게도 난 아직도 미국에 살고 있다.


미국에 사는 일이 대단히 즐겁지도 그렇다고 딱히 슬프지도 않다. 그저 익숙해졌다는 게 맞다. 그러나 여전히 타지에서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일은 때때로 시큰한 감정을 동반한다. 고국에 대한 향수는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평생 지고가야 하는 보이지 않는 어떤 무거운 짐처럼 여겨진다.


10년 넘도록 타지에 살아오며 한국으로부터 온 소포를 받는 일은 언제나 내게 설렘을 준다. 시애틀에서 유학생이던 시절에는 시애틀의 외곽에 거주한 데다 자동차도 없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일이 주된 문제였다. 딸이 혹여나 굶을까 노심초사 했던 엄마는 햇반, 밑반찬 등을 바리바리 싸서 주기적으로 기숙사에 보내주셨다. 난 엄마가 직접 해준 오징어포, 잔멸치 볶음 등을 일부는 반찬통에 담고 일부는 냉동실에 꽝꽝 얼려 적어도 2개월은 밑반찬 걱정없이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당시만 해도 '아마존'의 존재감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아마존은 책을 파는 온라인 업체로서의 역할만 했을 뿐이었다. 지금이었더라면 차가 없더라도 아마존으로 이것 저것 손쉽게 주문할 수 있겠지만, 당시 시골에 고립된 한인 유학생은 한국으로부터 온 소포를 통해서만 필요한 물건들을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내가 주기적으로 한국으로부터 소포를 받는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아마존과 같은 유통업체의 부재만이 한국에서 소포 받는 일의 이유는 아닌 것 같다. 고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무엇, 그게 있다.


가령 나는 한국의 신간 책을 정기적으로 구입한다. 이곳 LA에는 한국 서점도 몇 개씩은 있지만, 한국에 출판된 모든 신간을 팔진 않는다. 물론 내가 따로 주문을 넣으면 주문을 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기다려야 하는 불편함 플러스 1.5~2배 수준의 책 가격으로 인해 그닥 끌리지 않는 선택지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사고싶은 책은 시시때때로 추가되기 때문에 매번 서점에 가서 주문을 넣는 시스템은 내게 적합하지 않다. 인터넷 서점으로 온갖 책들을 뒤져보다 쿠팡으로 구입하는 일, 그게 내겐 훨씬 더 속 편한 일이다.


게다가 한국 브랜드의 옷이 사고싶을 때가 종종 있다. 미국은 한국에 비해 쇼핑의 천국이긴 하지만 때때로 한국 감성이 담긴 한국스러운 옷이 입고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다 문득 여주인공이 입은 옷, 또는 인스타그램에서 본 어떤 옷을 구입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옷 또한 소포에 포함되는 단골 아이템이다.


식품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과자, 젤리, 소스 등을 구입하는 일도 많다. 아이들이 코로나 시기에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간식을 요구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여기에서만 구입하는 간식 종류만으로는 한계를 느껴서 더 맛있고 건강한 간식이 없을까 쿠팡을 뒤적이곤 한다. 나 역시 거북칩 초코맛이 한인마트에 풀리기 전 쿠팡을 통해 주문한 후 소포로 받아 먹어볼 수 있었다.


집콕생활로 인해 손 놓고 있던 살림도 본격적으로 하다 보니 주방용품을 사는 재미도 알아버렸다. 나무 수저세트, 수저받침, 테이블매트, 그릇, 머그컵 등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는 왜 사고싶은게 넘쳐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살면서도 네이버 쇼핑, 쿠팡 등을 이용해 용이하게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있는 요즘이다.


과거에는 엄마가 미국으로 소포를 보내주는 일을 전담했다면, 이제는 더이상 엄마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배송대행업체를 이용하면 훨씬 더 편리하고, 값도 저렴하다. 나는 한 배송대행업체의 단골손님인데, 배송대행업체는 내가 주문한 물건들을 일일이 배송받아 박스를 꾸려, 내가 원할 때 미국으로 부쳐주는 역할을 한다.


 단체 할인가 50%가 붙기 때문에 엄마에게 부탁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격적인 면에서 유리하다. 엄마의 수고도 덜 수 있고. 요즘 엄마 또한 내게 보내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 나에게 직접 보내지 않고 같은 한국 내에 위치한 배송대행업체로 보낸다.


한국에서 온 소포는 언제나 옳다. 나를 설레고 기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특히나 코로나 시대에 매일이 반복되고, 집 안에 갇혀 새로울 게 없는 일상에서 한국에서 온 소포는 고국의 향기를 느끼게까지 해준다. 배송비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나의 소소한 행복을 위해 오늘도 한국에서 온 소포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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