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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Jun 30. 2021

아들 둘이 뭐 어때서요

아들 둘맘의 속사정

어머, 어떡해. 엄마한테는 딸이 꼭 필요한데. 셋째 낳아요.


어디가서 자녀 성별을 묻는 질문에 '아들만 둘'이라고 답하면 으레 들려오는 걱정들은 대개 이런 것들이다. '엄마의 노후에는 딸이 꼭 필요하다' '아들 낳아봐야 소용없다' '자식 키우는 재미는 딸이 있어야 알 수 있다' 등등. 처음 한 두번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수십번 같은 반응에 대꾸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아, 셋째딸을 낳아야하나?'라는 고민에 이르게 된다. 정말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한가?


물론 나 역시 딸을 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첫째가 아들이었기 때문에 막연하게 둘째는 딸이겠거니 생각했었다. 남편도 나도 남매로 자란 탓에 아들 하나 딸 하나가 마치 우리 가족에게 주어질 당연한 결과처럼 여겨졌다. 둘째를 임신하고 첫째 임신 때와는 달리 고기 보다는 야채와 과일 위주의 음식에 끌리는 나를 발견하며 역시 둘째는 딸이구나, 내심 확신했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를 통해 둘째 마저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날, 나 혼자 병원에서 걸어나와 길가 벤치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들만 둘이라고...? 아들만 둘을 키우는 삶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삶인데.


셋째 딸에 대한 고민은 둘째가 태어난 지도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쉽사리 셋째를 가지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셋째가 아들일까봐 두려워서라기 보다는(이번에도 둘째를 가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셋째는 왠지 딸이 아닐까 굳게 믿고있는 것이다), 임신과 신생아 육아의 과정을 또다시 되풀이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와 둘째가 각각 만 4세, 만 2세. 지난 2016년 첫째를 출산한 이래 난 약 5년째 육아 중이다. 임산부 과정은 당연하고 육아의 세계는 고되고, 고되고, 고되다... 나는 일에 있어서는 엄살이 거의 없는 편인데, 육아에 관해서는 엄살쟁이다. 왜 이렇게 육아는 힘든걸까?


개인적으로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이 반복되는 육아가 그 어떤 일보다도 힘겹게 여겨진다. 인생에서 행복감을 주는 여러가지 요소 중 나는 성취감에 큰 가치부여를 해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육아라는 건 어지간하면 성취감보다는 죄책감과 부족함 등의 감정을 동반하는 일 같다. 아이가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해도 '내가 뭘 잘못했지?' '이 아이는 왜 이러지?' 물음표가 끊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성취감이라곤 찾아보기 힘들고, 내가 커리어적으로 도태될까 불안감만 싹틀 뿐이다.


이런 내가 딸을 꿈꾸는 이유가 있다면 다만 미래의 나에게 딸이 있으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상상이 내면에 자리잡아서다. 일단 나의 남편과 남동생의 경우만 보더라도 '아들은 딸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들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평균적으로 아들은 딸보다 무덤덤하고, 결혼 후 자신의 가정에 올인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딸을 원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한 일종의 보험을 들으려는 마음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내 노년의 삶을 보장받기 위해 딸을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 자문하게 됐다. 자식을 키우는 목적은 무엇보다도 '독립'인데, 딸을 원하는 마음에선 자식을 독립시키려는 마음가짐이 배제됐다.


물론 변명은 존재한다. 딸에게 의존하려는 게 아니라 딸과 친구가 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미 내게는 평생의 동반자인 남편이 있고, 함께 수다떨고 여행다닐 친구들도 있다. 꼭 딸이 있어야만 노년의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고작 이런 이유로 딸을 낳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아들 둘을 키우며 육아로 얻는 행복은 충분한 것 같다.


둘째가  돌을 넘긴 이후로 형제의 사이가 눈에띄게 좋아졌다. 어제도 일하다 문득 아이들이 너무 조용하길래 방에 들어가 봤더니  아들이 요리 놀이를 하며 키득댔다. 어느새 저만큼 커서 둘이 친구처럼 소통이 가능하게  걸까? 앞으로도  아들은 삶의 많은 부분들을 공유하며 재미나게 살아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아들만 둘을 낳았다는 사실이 새삼 좋아졌다. 남매가 아니어서 아쉬웠던  순전 나를 중심에 두고 기인한 생각이었고, 아이들을 중심에 두자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나도 어렸을  남동생이 아닌 여동생 또는 언니가 있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던가. 아이에게는 같은 성별만이   있는 행복이 있긴 하니까.

 


그러니 이제 딸 타령은 그만 해야겠다. 아들 둘로도 충분하다.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나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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