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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Seok Aug 20. 2021

왜 꼭 아이 학교는 엄마가 데려다줘야 하죠

미국의 '아빠' 학부모

며칠 전 첫째 아들의 개학날이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3월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굳게 닫혀있었던 학교들의 문이 드디어 열리기 시작했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학교가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미 전역의 대다수의 교육구들은 올 가을학기부터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학교 운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년 반이 넘는 시간동안 홈스쿨링을 하며 거의 백수생활을 이어오던 첫째 아들은 실로 오랜만에 학교 문턱을 넘어볼 수 있게 됐다.


개학 첫 날, 학교 앞에 도착해 입이 떡 벌어졌다. 디즈니랜드가 따로 없는 광경이었다. 학교 앞은 ㄱ자로 이어지는 긴 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었다. 꼼짝없이 아들은 개학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긴 줄 때문에 정상시간에 수업이 시작하는 것도 불가능하긴 했다. 세상에 놀이동산도 아니고, 1시간씩이나 줄을 서서 학교 안에 들어가야 하다니. 코로나19 속에 진행되는 개학이다 보니, 학교 측에서도 평소와는 달리 분주할 수 밖에 없긴 했다. 학생들의 백신 접종 여부, 최근 2주 내로 받은 코로나 19 진단검사 결과 등등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으니까. 캘리포니아의 내리쬐는 햇볕 아래 마스크를 쓰고 얼굴이 벌개진 채로 우리는 긴 줄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아빠 학부모들이
거의 절반 이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가족 또한 첫째 아들이 긴 홈스쿨링을 끝마치고 태어나 처음으로 학교를 가는 날이어서 남편이 그날 하루 휴가를 내긴 했다. 그런데 개학 전 날 남편과 나는 '괜히 우리 가족만 부부가 나란히 가서 튀는 게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별도의 입학식이 없고, 그저 개학날일 뿐인데 부부가 나란히 등교길에 나서는 모습이 오버스러울까 싶어서였다. 게다가 아빠가 등교길에 나서는 모습이 어색할까도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오산이었다. 부부끼리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온 경우가 허다했고, '아빠'가 단독으로 아이를 데리고 온 경우도 있었다. 학부모 중 아빠의 인구밀도가 적어도 절반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우리 부부는 어리둥절했다. 남편이 휴가를 내지 않았으면 아들이 서운할 뻔 했다고,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다들 뭐하는 사람일까? 어떻게 아이를 데려다 주러 시간을 낼 수 있었지?"


궁금해졌다. 모두가 직업이 있을 텐데, 어떻게 등교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걸까? 출근 전 들린거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하교길에도 아빠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건 첫날 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아빠들은 여전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왔다.


궁금해진 마음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나와 남편이 굉장한 오류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네티즌은 미국에서는 아빠들이 등하교를 전적으로 도맡는 사례가 보편적이라고 했다. 개학 첫 날은  많은 학부모들이 중요한 날로 인식해서 휴가를 내고서라도 부부가 함께 등하교를 시키고, 보통 날들에도 바쁜 엄마들을 대신해 아빠가 등하교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을 몇몇 네티즌의 설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 두 사람 모두가 아이의 등하교를 책임질 의무가 똑같이 있다. 특히 한 쪽이 전업을 도맡지 않고 두 사람 모두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이 공평하게 절반씩 아이의 등하교를 맡는 게 옳다.


왜 우리 부부는 그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뿌리깊게 박혀 있는 한국적인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내부에 위치한 초등학교를 지나가다 보면 나는 아빠 학부모를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엄마가 편한 원피스 차림으로 아이들의 등하교 길을 함께했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늘 엄마와 같이 있었다. 아빠가 아이를 학교에 데리러 가는 경우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당연히 아빠가 등하교에 참여하는 집도 있겠지만, 분명 보편적인 일로 여겨지진 않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2세가 아닌 1세대이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 정서가 더 친근하다. 우리 부부는 양쪽 모두 일을 한다. 지금이야 내가 재택근무와 출근을 반반씩 하는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내가 등하교를 도맡는게 당연한 일이지만, 과거 첫째 아이가 프리스쿨을 다니던 시절에도 등하교는 전적으로 나의 일이었다. 물론 내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더 평이 좋은 프리스쿨이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단지 그 사실만이 내가 등하교를 떠맡는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아주 당연하게, 등하교는 엄마의 영역처럼 여겼던 것일 테다. 우리 부부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물론 '한국에 남녀차별이 여전히 존재한다!' 라고만 비판하기엔 짚고갈 문제가 하나 있다. 미국에서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도가 높은 이유는 유연한 미국 회사의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시기 이후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도 많아졌거니와 애당초 한국 회사들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만큼 미국 회사들의 출퇴근 문화는 자유롭다. 본인이 일할 때와 일하지 않을 때를 주체적으로 정해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녀를 돌보는 일에도 엄마들과 똑같이 참여할 수 있다. 일하는 엄마들 또한 자유로운 근무환경 덕에 육아를 병행하는 일이 어느정도 가능할테고.


남편에게 원래 미국에서는 아빠들이 등하교에 참여하는 일이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벤트성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남편은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 했다. 캐나다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와 평균적인 한국 남자에 비해 훨씬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남편인데도 편협한 사고에 갇혀 있었다니, 새삼 놀라운 일이다.


아이가 학교를 다닌 지 일주일째. 여전히 등하교길에 아빠 학부모들을 만난다. 아이 손을 꼭 잡고 학교를 향하는 그들이 너무나 멋있다. 중년의 남자가 진짜 멋있을 때는 이럴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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