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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Apr 01. 2024

라마단 보내는 한국인 모습 상상 vs. 현실

그 차이가 어마무시합니다.

  2023년 3월 무슬림 국가 요르단에서 생애 첫 라마단을 경험했다. 라마단에 대한 정보는 들은 것이 없었다. 한국에서 요르단 출국 전 교육을 받았지만 생활 전반에 관해서만 배웠다. 종교와 문화적인 부분은 내가 경험하는 편이 낫다 했던가... 


  라마단 시작을 프랑스 어학연수 때 만난 무슬림(시리아,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등) 친구에게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서 압사하는 것은 비극이 아니라는 얘기가 떠올랐다. 한국에서도 무슬림 신자들이 성지와 사원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기사 사진을 몇 장 본 게 전부다. 현지 생활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는 시점이었으나 라마단에 대해 따로 찾아보진 않았다. 그렇게 현지인 직원 단식에 따른 단축 근무(점심시간 30분으로 단축)에 대한 안내만 들은 채 한 달간의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라마단 기간 알아본 정보를 적어본다. 요르단과 같은 무슬림 국가는 양력이나 음력이 아닌 이슬람력을 사용한다. 현지인 친구한테 이슬람력은 어떻게 생겼고, 무엇을 읽어서 날짜를 계산하냐 물어보았다. 지인 여러 명에게 물어보았으나 다들 이슬람 달력만 보여주고 원리는 설명해주지 못했다. 나도 양력과 음력을 태양과 달의 운행에 따른 차이 정도로 알고 있으니 할 말은 없다. 이슬람력이 있긴 한데 평소에는 태양력을 사용한다. 우리가 절기는 음력으로 쇠고 평소엔 양력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라마단은 그 이슬람력의 9월에 해당하며 '무더운 달'이라는 뜻이다. 선지자 모하메드(Mohammad)가 쿠란(꾸란)을 계시받은 때로 이 기간에는 해가 떠있는 동안 물과 음식 섭취, 흡연, 음주(평소에도 금주), 성관계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이슬람 신자가 꼭 지켜야 하는 5대 의무 중 하나인 라마단이지만 모두가 이행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 생리 중이거나 임신 중인 여성, 환자, 노인, 여행자 등은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건강이 안 좋거나 힘들어도 최대한 다른 신자와 비슷하게 신자로써의 의무를 지키려 했다. 몇몇 지인은 라마단이 해가 짧은 겨울이면 좋겠다는 농담도 했다. 과연 100% 농담인지는 모르겠다. 해가 긴 여름의 라마단을 꺼리는 것만은 확실했다.


  라마단은 초승달 관측이 되면 시작된다. 정부에서 라마단 날짜를 공식으로 발표하기 전부터 곳곳에서 초승달 장식을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인 몰리는 곳은 물론이고 조용했던 주거 단지까지 곳곳에 초승달과 달 모양의 장식이 걸려 눈이 아플 정도였다. 어디를 가든 형형색색의 달모양, 별모양 전등이 거리를 밝혔다.


  라마단 기간 해가 떠있는 동안은 다들 조용히 고통스러운 단식을 이어간다. 하지만 해가 자취를 감추는 순간 무슬림들은 돌변한다. 금식이 해제되는 후 먹는 저녁의 첫 끼인 이프타르(Iftar)를 아주 거하게 먹는다. 그리고 다음날 해가 뜨기 전까지 끊임없이 먹는다(고 들었다). 저녁에 해가 진 뒤 공원에 가면 평소보다 2-3배 되는 양의 음식을 챙겨 와 먹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동료이자 친구인 요르단인 T는 라마단 기간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은 음식 섭취를 한다고 했다. 오히려 이 기간 위장 문제로 내원하는 환자 수도 증가한다고 한다. T는 라마단 기간에도 평소처럼 먹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이슬람 신자의 5대 의무

신앙 고백, 기도, 라마단, 구빈세(기부), 성지 순례(메카에 성지 순례를 가는 것으로 경제적/육체적으로 가능할 때 행함)


  라마단 기간 동안 정부 기관 및 전국의 대부분의 가게 운영 시간이 더 짧아졌다. 평소 오후 4시에 퇴근했다면 라마단 기간에는 한 시간 이른 오후 3시에 퇴근했다. 근무 시간 동안 물도 못 마시고, 음식도 못 먹는 현지인 직원을 위한 제도 같지만 업무로 관계된 다른 기관도 전부 단축근무를 시행해서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점심시간 30분은 밥을 먹지 말라는 뜻과 같다. 


  라마단 시행 전 같은 층에 있는 또래 현지인 직원한테 "T님, 저도 같이 단식 한 번 시도해볼게요"라며 단식 의사를 밝혔다. 평소에도 일하면서 간식을 계속 먹었기 때문에 아침에 도시락 대신 간단히 바나나와 두유만 챙겼다. 이왕이면 아무것도 안 먹으려 챙겨간 음식은 눈에 보이지 않게 사물함에 넣어뒀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배꼽시계가 작동했다. 평소와 달리 그 어떤 음식물도 넘어오지 않아서인지 뭔가를 먹으라는 듯 시끄럽게 울어댔다. 결국 바나나를 먹었다. 점심은 참아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지키지 못했다. 


"아이릿님 점심 안 먹어요?" 맞은편에 앉아있던 상사가 물었다.

"저 라마단 기간 동안 단식 한 번 해보려고요."라면서 힘없이 웃어 보였다.

"밥이랑 고추참치 있는데 같이 먹어요. 탕비실에 라면도 하나 끓여 먹고요." 한 번 더 유혹한다.

"어... 그럴까요?" 빠르게 넘어갔다.


  바로 어제 현지인 직원한테 단식 다짐을 했는데 그 앞을 빠르게 지나 탕비실로 향했다. 문을 꽉 닫고 전자레인지에 인도미 라면과 밥을 데우고, 고추참치를 깠다. 코딩이라도 된 것 마냥 모든 행위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라마단 첫날이 지나갔다.


  첫날 고삐가 풀린 탓인지, 아니면 30분의 점심시간을 알차게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와 두 명의 상사는 점심시간을 위해 출근을 한 것처럼 점심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1시간일 때도 택시를 불러 시내로 나가 음식을 먹고 온 적이 없다. 하지만 라마단 기간엔 30분 동안 택시 타고 시내 가서 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밥을 먹었다. 모든 음식을 저작활동이 필요 없는 음식인 것처럼 후루룩 들이키고 삼켰다. 30분을 아주 알차게 사용해 점심을 잘 챙겨 먹은 우리 셋은 2-3kg 이상 쪘다. 라마단 기간 단식으로 살 좀 빠질까 했는데 윤기가 흐르고, 지퍼는 잠기지 않는 몸을 얻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라마단을 보낸다 해도 극한의 효율을 발휘하여 점심을 잘 챙겨 먹을 거다.


  라마단이 끝나면 이드 알 피트르(Eid Al Fitr) 축제가 시작된다. 더 이상 낮 시간 단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라마단이 끝나기 직전 친인척이 모여 요르단 디저트 마물(Mamoul), 크나페(Kunafeh), 카타예프(Qatayef) 등을 만들었다. 나는 친구 S의 친구 집에 가서 마물을 만들었다. 반죽을 하는 것부터 속을 채우고 모양내는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새벽에 이슬람 사원에 기도하러 가보고 싶었는데 게을러서 한 번도 못간게 너무 아쉽다.


  현지인은 단식과 축제의 반복이었겠지만 나는 한 달 내내 축제였다. 생활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요즘은 배달 문화가 발달해 장보기, 음식 주문 등 전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라마단 기간 동안 살까지 쪘으면 말 다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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