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은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 국가다. 무슬림 국가에서 기독교 행사가 열릴까? 놀랍게도 열린다. 어떤 신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보다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자를 좋아한다. 12월 25일을 앞두고 요르단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가 열린다는 정보를 받았다. 암만 4 서클에 위치한 4성, 5성 호텔 1층, 인근 기독교 마을인 푸헤이즈(Fuheis)와 마다바(Madaba)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가 열렸다. 전부 구경가보고 싶었는데 이동이 쉽지 되지 않아 집 근처 호텔에 놀러 갔다. 호텔 입구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는 화려한 장식과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현지인 만들어서 판매하는 캔들, 디저트, 빈티지 의류 등을 파는 매대도 구경했다. 완연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연말이었다.
12월 어느 날 단체카톡방에 "압달리 블뤼바드(Abdali Boulevard)크리스마스 마켓 가실 분?"하고 파티원 모집 글이 올라왔다. 전부터 압달리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이쁘다는 말을 들어와서 바로 "저 갈래요."하고 답을 보냈다. 평소에는 정시 4시 퇴근이었지만 이날은 업무가 밀려 평소보다 늦게 일을 마쳤다. 계단을 내려가며 우버 앱을 켜서 경로 설정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은 곳을 가는 건지 기본요금의 1.3배*를 내고 기사를 불렀다. 압달리로 가는 길에 차량이 몰려 1분 동안 1m도 겨우 움직였다. 차 사이에 갇혀 '걸어갈걸...' 하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평소라면 10분 이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15분 넘게 걸려 도착했다. 쇼핑몰 안에서 파티원을 만나 마켓이 열린 곳으로 이동했다.
압달리 몰 맞은편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마켓에 들어가기 위해서 표를 사야 했다. '얼마나 이쁘게 꾸며놨길래 입장료까지 받냐'는 이야기를 하며 들어갔는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라고 할만하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와 크리스마스 장식의 화려함에 유럽 한 도시에 놀러 간 것 마냥 마음이 들떴다. 평소에도 사람이 적은 편은 아니었는데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려서인지 평소보다 두 세 배 많은 인파가 모였다. 사람들과 접촉을 최대한 덜하며 걸어갔다. 지역 가수 공연도 열렸고, 일부 식당과 카페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빠질 수 없는 군밤, 츄러스 등을 판매했다. 술이 금지된 국가라 뱅쇼는 찾아볼 수 없었지만 따뜻한 코코아는 마실 수 있었다. 암만에 거주하면서 공연이나 전시를 볼 기회가 거의 없어 아쉬웠는데 이날 아쉬움을 싹 털었다. 다른 이슬람 신자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외출한 건 아니겠지만 다들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은 전부 밝았다. 타 종교 행사를 즐기는 무슬림을 보며 전 세계 종교인이 화합해서 진행 중인 전쟁과 싸움을 그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퇴근 시간 등 이용객이 몰리는 시간대에 우버 이용 시 기본요금에 추가 비용이 붙는다.
반짝거리는 불빛, 잘 꾸며진 트리 등은 눈으로만 보고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크리스마스 마켓 매대. 다들 퇴근하고 저녁도 못 먹은 상태로 모여 배고픈 상태였다. 나는 스프, 파티원들은 츄러스와 군밤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자마자 츄러스 반죽을 기름에 넣어 튀겨냈다. 스프는 보온 통에서 꺼내 종이컵에 담아 튀긴 쉬락을 얹어주었다. 뜨거운 츄러스는 바로 설탕과 시나몬 범벅을 한 뒤 담아줬다. 갓 튀긴 반죽이 맛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외국 음식이라 어려웠던 걸까. 우리나라 밤보다 작은 군밤도 받았다. 작은 고추가 맵다지 않나. 바로 까서 한 입 먹어봤는데 단 맛이 거의 없는 데다가 플라스틱 씹는 맛이 났다. 스프는 이미 튀긴 빵이 올라간 것에서도 알 수 있든 유럽의 맛보다는 중동의 맛이었다. 음식을 분위기 맛으로 먹기도 하는데 이날이 그랬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10점 만점에 6점이었는데 그중 분위기 점수가 3점이다.
그래도 주린 배를 채우는 데는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려 했는데 공연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평소와 달리 광장이 인파로 가득 찼다. 우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서 온기를 느끼며 아직 남아있는 군밤을 까먹으며 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불이 8시에 켜지기로 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늦게 켜졌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트리 근처를 오갈 때마다 다들 '지금인가! 곧 켜지려나 봐!'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표정을 드러냈다. '지금인가!'라는 생각을 10번쯤 하다 파티원한테 "오늘 켜지긴 켜지는 거야?"하고 물었다. "켜지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 의문형이었다. 포기하고 일어서서 집에 갈까 고민하면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공연이 튀어나왔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어울리는 악대가 지나갔다. 루돌프 등으로 꾸민 직원들이 지나다니며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서늘해지는 바람에 슬슬 일어날까 고민하던 중 압달리 블뤼바드 불이 꺼졌다. 캐롤 소리가 곳곳에 울려 퍼지며 커다란 트리에 불이 켜졌다. 기대에 미치는 화려한 점등식은 아니었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즐기는 것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매대를 연 사람들은 실내에 있었는데 실외에서 꽤 오래 떨어서 상점 구경은 넘어가기로 했다.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곳까지 쭉 걸어가다 흔들리는 시야에 흔들리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건물 외벽을 바라보니 산타 옷을 입은 사람들, 아니 산타할아버지가 선물꾸러미를 들고 마법으로(장치를 단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마법의 힘으로 건물 외벽을 타고, 공중으로 떠오른 산타 할아버지는 간식과 크리스마스 루돌프 머리띠 등을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온 모두에게 흩뿌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먹거리, 즐길거리, 볼거리를 잔뜩 즐기고 파티는 해체되었다. 해체 전 타코를 먹었는데 그 또한 분위기 점수 포함 6점. 타코를 먹을 때 저 멀리서 들려오던 익숙한 음의 팝송이 아니었으면 3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