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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Apr 03. 2024

365일 더울 것 같았던 요르단에도 가을, 겨울이 있다

한국보다 춥게 느껴지는 날씨, 사람으로 이겨내기

  새로운 일을 배우고 적응하고, 여러 직종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요르단 여행을 하다보니 어느새 11월이 되었다. 요르단으로 출국하기 전 중동 생활 경험이 있는 선배한테 "전기 장판도 꼭 챙기고요. 우산도 무조건 챙기세요."라는 조언을 들었다. 경험자의 조언에 따라 원래 쓰던 전기 장판은 동생한테 주고,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전기 장판을 구매했다. 엄마는 비가 얼마나 오겠냐며 가벼운 우양산을 선물해줬다. 필수품으로 꽉 차서 공간도 없는 캐리어에 부피가 작지도 않은 장판을 구겨넣고 싶었지만 최대한 조심히 넣으면서도 '비가 올까? 추울까?'라며 경험자의 말에 의심을 품었다.

 

  요르단의 여름볕은 머리카락이 갈색으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뜨겁다. 내가 사는 건물 옥상에는 태양열판이 설치되어 있어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열 덕에 뜨거운 물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종종 고무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데도 뜨거운 물에 손이 익었다. 수도꼭지를 찬물 쪽으로 돌려봤는데 찬물이 나오지 않았다. 덜 뜨거운 물이 나오긴 했지만 이미 손은 익었고, 더 익기 전 빠르게 설거지를 끝냈다. 언젠가 중동 가정집에서 여름에 찬물이 나오면 잘사는 집이라 했던 농담이 생각났다. 설거지를 하며 뜨거운 물을 끌어다 썼는데도태양 에너지가 남았는지 근육을 지질듯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랬던 요르단의 가을이 끝나가기 시작했다. S와 S의 남편 Y는 겨울(12월)이 오기 전 온수를 사용할 때 필요한 가솔린을 채워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3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으로 약 50만원 어치의 기름을 채웠다.(놀랍게도 두 달 만에 사라졌다.) 기름을 채우면서도 '정말 찬물이 나올까?'하는 의심을 했다. 내 일상은 언제나 의심으로 가득하다. 미리 여러번 안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열기가 사라지고 온수도 끊기고, 거실과 침실에 서늘한 공기가 돌아 깜짝 놀랐다.


  어느 나라든 겨울이라는 계절은 추위도 추위지만 기름값처럼 여름에는 없던 추가 지출이 생겨 두렵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오늘 하루도 잘 지나갔다'며 숨을 내쉬었더니 하얀 김이 하얗게 올라왔다. 실내가 야외보다 더 추운 것 같다니. 집주인 S는 10월 말부터 "아이리스, 필요할 거예요."하며 난방기구를 넣어주었다. 그때도 "이게 필요할까요?"하면서도 우선 받아서 거실 한 켠에 쳐박아 놨는데 필요했다. 전기세를 걱정하면서도 방안 가득한 냉기에 굴복해 난방기구를 켰다. 방 전체가 따뜻해지길 기대했지만 열선이 있는 일부분만 따뜻했다. 대리석 바닥에서는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니, 온돌로 방 전체가 따뜻한 우리나라가 그리워졌다. 출근용으로 입은 코트를 벗고 옷장에서 롱패딩을 꺼내 입고 목도리까지 둘렀다. 전기 장판을 켰고, 침대 위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뵤의 어머니가 해주신 한상 차림
크리스마스 이브 각자 음식 챙겨와서 파티
상사와 기린님 저녁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 한기가 도는 집에 업무 중 만난 사람들, 회사 분들,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다들 퇴근 후 전기장판 위에서 하는 생활에 지쳤는지 갑작스러운 초대에도 기꺼이 시간을 내서 와주었다. 사람들을 초대하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니 열이 올랐다. 하나 둘 도착한 사람들이 거실에 모이니 거실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온열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 온기만으로 방이 따뜻해졌다. 다들 택시를 타고 모였지만 불평 대신 "집에서 한기가 돌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는데 초대해줘서 고마워.", "여럿이 모여서 밥 먹으니까 따뜻하고 참 좋다."라는 감사의 말을 주었다. 사람들의 온기와 따스한 말을 입고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겨우내 초대하고, 초대받는 생활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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