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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Apr 05. 2024

요르단에서 일하면서 배운 것

임의 해석은 금물입니다.

주말에 일하다 쉬는 중

  요르단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적응이 제일 오래 걸린 부분은 업무 적응이 아니라 문화 차이다. 같은 민족, 같은 언어를 쓰는 한국인과 일을 하더라도 살아온 환경, 경험 등이 상이하여 회의 중 이견이 생긴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회사에서 누룽지를 몰래 먹는 중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누구는 몰래 먹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누구는 누룽지를 어떻게 몰래 먹는지 의아해 할 수 있다. 평소 누룽지를 끓여서 마시는 사람과 과자처럼 씹어먹는 사람의 자유로운 해석인 것이다.

 

  문화, 종교, 언어, 인종 등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는 국가 출신의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배경 지식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과 신앙심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조심스럽게 일을 해야만 했다. 첫 3개월 동안 업무 실수를 몇 번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는 나와 현지인 직원 사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차리기. 두 번째는 문화 차이로 인한 답답해하지 말고 그냥 이곳은 이렇구나 하고 넘기며 스트레스 덜 받기.


  내 주 업무는 요르단 내 사회 문제(수자원, 기후 변화, 난민 등)  등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업무 특성상 타기관 현지인 직원과 협업해서 진행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다. 한 번은 N사와 회의를 하기 전 N사 직원에게 자료를 받아 정리해서 상급자에게 빠르게 공유해야 했다. 자료 공유를 금방 해줄 것처럼 말했는데 주지 않았다. 보고 기한이 가까워져 다급해졌다. 이틀 뒤, 오늘은 자료 공유가 가능한지, 외근으로 불가능하다면 다른 직원 통해서라도 공유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동료에게 부탁해서 '곧(soon)' 보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처음부터 오늘까지 필요한 자료라 했으니 '곧'이 문자를 마치고 몇 시간 이내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기다리며 다른 자료를 정리했다. 갑자기 상급자가 내가 있는 층으로 와서 업무 진행 상황을 물었고, 자료 하나만 받으면 되니 오늘 보고를 있다고 했다. 퇴근 1-2시간 전 메일함을 확인했는데 새로 온 메일이 없었다. 왓츠앱 문자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결국 보고를 해야 하는 날에 맞춰 일을 끝내지 못했다. 상급자에게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말과, 현지인과 업무 진행 시 '정확하게' 시간을 정해서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다. 


  다음 날이 주말이었지만 어떻게든 자료를 받아서 보고서를 제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주말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이틀 내 자료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연락을 했다. 역시나 '곧' 보내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곧'이 언제인지 묻자 거짓말처럼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일요일(요르단은 금요일 토요일이 주말)이 되기 전 동료 직원이 자료를 보내주었다. 며칠 동안 연락했는데 미안하고 주말인데 보내줘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낸 뒤 바로 자료를 다운로드하고, 작성해 둔 보고서 빈칸을 채웠다. 작성 후 검토를 마치자마자 받는 사람을 상급자로 지정하고 메일을 보냈다.


  주말 동안 업무는 끝났지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현지인 동료 T에게 '곧'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T, 만약 협업하는 동료가 '곧(soon)' 자료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하면 언제까지 받을 있다고 생각해요?" 

"일주일 정도?" 잠시 고민한 뒤 답이 나왔다.

"일주일?!"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미안해요. 그런데 곧이라고 하면 당일 보내주는 거 아니었어요?" 하고 덧붙였다.

"음. 요르단에선 곧이라고 하면 보통 2-3일이고 최대 7일 정도 생각하면 돼요." 내 마음을 이해하되 현지 문화는 그렇지 않으니 적응하라는 듯 알려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Inshallah*(인샬라. 모든 것은 신이 원하는 대로)."

"악! 저 그 말 아직 적응 못했어요!"하고 또 펄쩍 뛰었다.

"인샬라." 장난치듯 웃으며 얘기했다.


  이 일 이후 '곧(soon)', '최대한 빠르게(as quickly as possible, as soon as possible)'와 같이 모호한 표현을 보면 '정확히 언제'냐고 묻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현지인 동료의 말대로 2-3일을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업무를 진행했다. 물론 최대 7일이라고 했으나 빨리빨리의 민족인 나에게는 적용되기 힘든 이야기. 매번 미리 자료를 요청해서 받아뒀고, 현지 문화를 이해하되 최대한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습관을 길렀다.


*무언가 부탁하거나 요청했는데 준비되지 않았으면 무슬림들은 "인샬~라."하고 고개를 까딱하고 어깨를 으쓱한다. 한국인 직원들이 업무 문제로 스트레스받아 이마를 짚거나 머리를 쥐어뜯고 있으면 현지인 직원들은 그 옆을 지나가면서 '쟤네 또 저런다.'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인샬~라. 언젠가 되겠지."하고 위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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