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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Sep 09. 2024

요르단에서의 1년을 정리하며 아까바

벌써 1년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요르단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왔다. 7월 중순 떠나기 전 요르단의 휴일인 이드 알 아드하(Eid-al-Adha)를 즐겼다. 1년 동안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찍은 사진과 영상도 정리하고, 주요 사건 기록을 해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암만에서 해도 될 일이긴 하다. 요르단에서 즐기는 마지막 휴일이니 왕복 8~9시간 걸리는 버스를 뒤로하고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비행기를 택했다. 휴일이라 항공권 가격이 치솟았을 거라 예상했으나 왕복 약 60JD(버스 왕복 40JD)에 구매했다.


  로얄 요르단(Royal Jordanian) 항공으로 이동했는데 50분간의 이동인데도 불구하고 간식을 받았다. 감자칩, 견과류바 그리고 물.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니 아카바 공항 도착.



  요르단 현지 친구 S의 남편 Y가 아카바에서 사업을 한다. 이전에 친구들과 아카바에 놀러 갔을 때도 도움을 받아 이번에는 혼자 호텔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빈 방에서 지내라며 방을 내주었다. Y의 가족이 사는 집에 도착하여 짐을 채 풀기도 전에 Y는 "아이리스, S한테 생선 좋아한다고 들었다. 오늘 저녁으로 해산물 어때?"라며 제안했다. "생선 좋죠~~"하자마자 냉동에서 새우를 꺼냈고, 그대로 외출했다. 아카바 시내 구경을 한 번 쓱 하고 나서 생선가게에서 들러 거대한 생선을 사서 Y의 사촌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


  Y는 친구들을 초대했고 여럿이서 해산물 한 상을 즐겼다. 붉은색 바탕에 검은색 점이 잔뜩 나서 징그러워 보이던 생선은 생김새와 달리 무척이나 부드러운 속살로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버터를 넣고 구운 새우구이는 말할 것도 없다. 요르단 생활 초반 만났던 현지 친구들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1년이 흘렀다는 이야기 듣더니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얼마간의 침묵이 끝나고 무사히 잘 돌아가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간 생활은 어땠는지, 또 올 계획인지 등을 물었다. 지난 1년을 정리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친구들 덕분에 낯선 중동 국가 그리고 첫 이슬람 국가에서 잘 지냈다. 또 오면 싶다고 하니 남은 기간 동안 직장을 구해서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지 말라며 웃었다. 그것도 좋지만 가족들 보고 다시 오면 안 되겠냐 하니 "Family is important (가족 중요하지)."하고 또 웃었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를 잘 지키고 있는 요르단사람 다운 답변이다.



  다음 날은 피곤해서인지, 휴일이라 몸이 늘어져서인지 늦잠을 잤다. Y가 일터로 가기 전 일러준 대로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꺼내서 가볍게 점심을 챙겨 먹었다. 가방에 보조배터리, 공책, 필기구 등을 물건을 바리바리 챙겼다. 그러던 중 Y의 다른 친구에게서 "오늘 일이 일찍 끝나서 너랑 놀 수 있어."라는 문자가 왔다. 카페에서 아주 잠깐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길을 나섰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 이동하던 중 친구가 도착하여 둘째 날 또한 정리대신 추억을 쌓으며 끝이 났다.


  셋째 날은 그냥 포기했다. 전날 밤 잠수함 체험을 미리 예약해 뒀다. 이번에는 가볍게 공책과 볼펜만 챙겨서 체험장소로 갔다. 5명 이상이 모여야만 운영이 된다고 하였다. 다행히 프랑스인 4인 가족이 예약을 해서 딱 5명이 되었다. 겉보기에는 배인데 안쪽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문을 닫으면 잠수함에 탄 것 같더라.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물고기와 산호초를 구경하다 보니 체험 시간이 금방 지났다.



  가방은 챙겨 왔지만 그저 지갑을 넣고 다니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다. 해변에 누워 모히또를 마시면서 다시 휴식을 취했다. 양심상 챙겨 온 공책을 챙겨서 2023년 7월부터 있었던 사건을 월별로 굵직하게라도 정리해보려 했다. 약 1년 전의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땐 구글지도 내 이동경로 그리고 휴대폰 앨범에 들어가 그날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7월 18일 처음 요르단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고, 약 한 달 뒤 이사를 하고, 한국과 프랑스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고, 나 홀로 유럽 여행 2회,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한 유럽 여행 1회, 내가 주로 작성한 사회문제 보고서 몇 건,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11개월 동안 꽤 많은 일을 했다.

 


  멋진 풍경을 뒤로 하고 공책에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른 여행객의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원리퍼블릭의 I ain't worried가 들려왔다. 노래 가사대로 지금 이걸 해서 뭐하나~ 즐기자~하며 편히 잠들었다. 햇볕도 뜨겁고, 반사열로 눈이 부셔서 잠을 잘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눈을 뜨니 저녁시간이다. N드라이브 유료 결제를 멈추고 싶어 사진 정리를 위해 카페에 가려고 일어서니 진동이 울렸다. 어제 만난 그 친구다. "저녁 먹어야 하지 않아? 저녁 먹자 데리러 갈게."라는 문자였다. 바다, 하늘, 자연. 이런 휴양지에서 공책을 펼치는 것은 불법일 것 같다. 불법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리조트로 데리러 온 친구 차에 올랐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요르단의 휴일 저녁을 즐겼다.



  휴가의 마지막 날. 다른 건 다 내려놓았지만 6월 초에 산 책 첫 장을 넘겨보겠다는 결심은 포기하지 못했다. 친구가 챙겨 준 망고를 먹고 바다를 바라보며 한나 아렌트의 <On lying and Politics>를 펼쳤다. 서너 장 정도 읽었을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떠나기 전에 점심 먹자. 뭐 먹고 싶어?" 바로 답했다. "우리 생선 먹은 식당!". 아카바 여행의 시작과 끝을 같은 식당에서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기 음식이 제일 깔끔하고 맛있기도 했다.

  


아카바에서의 마지막 점심 (3일 내내 함께한 M과)

  M에게서 연락을 받자마자 미리 챙겨둔 캐리어를 챙겨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M은 언제나처럼 웃었지만 오늘 헤어지면 또 언제 보나 하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도 요르단에서 있었던 이야기, M의 일상 이야기,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를 하다 보니 비행시간이 2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은 언제나 빠르게 흐른다. 붙잡고 싶은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붙잡고 싶지 않았던 시간은 천천히 지나간다. 요르단에서의 1년 그리고 친구들과의 마지막 3박 4일 모든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흘렀다. 쏜살같이 달려가서 뒤통수 한 번 붙잡지 못했다.


  암만에서 요르단에서의 마지막 휴가 계획을 짜면서 '할 일'로 적었던 목록의 30%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없다. 1년 동안 즐길 만큼 즐겼고, 먹을 만큼 먹었고, 친구들과의 추억도 쌓을 만큼 쌓았다. 정리된 것이 없어서인지, 친구들과 여전히 이어져있어서인지 지금까지도 요르단 생활이 끝난 것 같지 않다. 비록 내 몸은 한국에 있지만, 요르단에서의 추억 덕에 정신은 여전히 요르단을 끊어내지 않았다. 앞으로도 힘든 일이 생기면 이때 힘이 되었던 추억을 꺼내서 해결하고, 마침내는 웃어 보여야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이 90% 이상인 데다가, 익숙지 않은 중동 문화로 초반에는 어려웠던 요르단. 환대와 교류로 나의 사고를 넓혀 준 고마운 나라. 언젠가 다시 갈 일이 있기를 바란다.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223312245605 (아카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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