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가면 '고급 식당'을 한 번쯤은 방문하는 편이다. 조금 더 많은 조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현지 음식은 어떤 맛인지,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동네 식당에서 판매되는 만 원 남짓의 백반집과 인당 10만 원 넘는 한정식 식당에서 제공되는 음식과 제공되는 서비스 다르듯, 외국에서도 체험하고 싶다. 게다가 다른 식재료를 사용한다? 집에서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다양한 식당 경험은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즐거움 중 하나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은 국왕이 거주하는 궁이 있는 데다가 다양한 인종이 400만 명가량 모여 사는 곳이다. 그래서 인구 65만 명인 우리 동네에서보다 다양한 음식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았다. 게다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서비스 대비 음식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일하면서 만난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은 곳은 1 서클과 2 서클 사이에 위치한 파크렐딘(Fakhreldin Restaurant). 매일 아침 읽는 요르단 신문에서 파르렐딘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뜻하는 메나지역(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최고의 식당 50개 중 8위에 올랐다는 정보를 얻었다. 심지어 스웨덴 왕실에서 귀빈이 방문했을 때 요르단 왕실에서 이곳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약 없이', '깔끔한 복장을 갖추지 않고'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갔다. 쉬는 날이라 가볍게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까지 썼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서 대기석을 보는 순간 '아, 옷 갖춰 입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하여 괜찮은 자리를 얻는 것도 힘들었다. 다행히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준 지배인 중 한 명이 예약 시간까지 2-3시간이 남은 자리가 있으니 그 안에 나가도 괜찮다면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안내해 주었다. 다른 선택지도 없고, 2-3시간이면 국가번호 82의 민족인 우리한테는 충분하니 바로 수락했다.
기본으로 제공된 샐러드와 빵의 맛이 확실히 달랐다. 가로로 썬 토마토에 요거트 그리고 숨막가루(Sumac, 요르단에서 잘 쓰이는 향신료)를 뿌려 제공해 주었다. 토마토는 새콤달콤하고 요거트가 부드럽고, 숨막가루가 향을 더해줬다. 숨막가루는 상큼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좀 갈린다.
기본으로 제공되는 빵 또한 달랐다. 인당 5JD 식당에서는 공장 제품을 주고, 인당 10JD 이상 지불하는 식당에서는 그래도 따뜻하게 구워낸 빵을 내준다. 이렇게 속까지 발효된 느낌의 빵을 주는 곳은 오랜만이었다. 마다바에서 먹었던 빵도 정말 맛있었는데 이날 파크렐딘에서 제공된 빵은 그 이상이었다. 향도 좋은 데다가 갓 구워져 뜨끈하기까지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에 빵을 찢어 요르단산 향긋한 올리브유에 찍어 먹었더니 본식이 나오기 전 배가 좀 찼다.
나는 외식을 할 때마다 파투쉬 샐러드와 훔무스를 꼭 시키고, 친구들은 감자튀김을 꼭 시키는 편이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서로의 취향에 맞춰 주문했다. 음식이 하나 둘 상위에 놓였다. 우리의 사랑 파투쉬(Fattoush), 향긋하게 튀겨진 감자, 훔무스(Hummus), 이곳에서 꼭 먹으라고 추천받은 피스타치오 치킨볼. 그리고 요르단에서 안 먹으면 아쉬운 구운 고기. 비싼 값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다. 직원은 우리 앞접시에 치킨볼을 하나씩 옮겨주었다. 샐러드도 조금씩 나눠주고 바로 접시를 치워주었다.
파투쉬는 다른 곳과 달리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를 사용했다. 다른 곳은 양배추, 오이, 피망, 토마토 정도를 사용하는데 여기는 양배추에 다른 샐러드도 추가했다. 게다가 조금 더 신선했고, 석류 몰라세스나 레몬향이 강한 곳과 달리 조금 약했다. 훔무스는 다른 곳보다 신 맛이 났는데 요르단 친구들은 레몬같이 신 맛이 날수록 비싼 음식이라고 했다. 감자튀김은 다른 곳에 비해 간이 약해서 좋았다. 좋은 식당이라 음식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를 내주는 건가 싶었다. 구운 고기 또한 신선한 고기인 것처럼 잡내도 전혀 안 나고 육즙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빵을 한 장 정도 먹는데 이날은 빵도 맛있고(다른 곳보다 작기도 하고), 고기랑 훔무스 다 맛있어서 두 장 이상 먹었다.
요르단식 아이스크림도 강력 추천받아서 시켜봤다. 아이스크림 하나 시키고 기다리는데 한 직원이 여러 가지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오는 걸 보았다. 우리끼리 "저런 건 뭘 시켜야 주는 걸까?"이러는데 직원이 점점 가까워졌다. 우리 식탁에 내오는 과일이었다. 뒤이어 아이스크림과 살구, 작은 당근, 오렌지류의 과일 절임도 나왔다.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는 꿀, 피스타치오 등을 곁들인 살짝 얼린 부라타치즈를 먹는 것 같았다. 엄청 차갑지도 않았지만 미지근한 느낌도 없었다. 터키 아이스크림을 쫀득하게 만들어주는 성분이 들어있는지 뒷맛이 살짝 쫀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에 절여진 과일과 채소는 보기와 달리 많이 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과일이 가진 특유의 맛이 더 잘 느껴졌다.
과일바구니를 받았지만 칼은 받지 못했다. 너무 많은 것을 먹었으니 입가심용으로 간단히 오렌지나 먹자~했지만 칼이 없어서 손톱으로 뜯어냈다. (우리를 보다 못한) 직원이 와서 오렌지 쉽게 까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오렌지를 가져갔다. 칼로 오렌지의 위와 아래를 잘라내고, 숟가락을 안쪽에 넣어 위아래 각각 한 바퀴씩 돌려주었다. 손가락에서 오렌지 향 잔뜩 묻히지 않고서 오렌지 까기 성공. 다른 것도 손질해주려고 했으나 이 이상 먹으면 큰일 날 것임을 알아서 아쉽지만 거절했다.
예약도 못하고 아마도 존재할 복장 규정도 지키지 못해서 못 들어갈까 걱정했는데, 배려로 잘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직업적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의 친절함은 덤.
요르단 여행 가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당이다. 이 외에도 3 서클과 4 서클 각 나라 대사관이 즐비한 거리에도 유명한 식당이 많다. 우선 메나지역 선정된 곳 중 아랍식 식당은 파크렐딘(Fakhreldin), 수프라(Sufra), 샴스 엘 발라드(Shams El Balad). 나머지 두 곳은 유럽식인 것 같다. 파크렐딘과 수프라 두 곳을 가봤다. 수프라는 세 번 이상 방문했는데 조금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라 나는 이곳이 더 편했다. 수프라 양고기 구이 정말 맛있다. 돼지고기 잊게 만드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