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Apr 20. 2024

요르단에서 방문한 요르단 최대 규모 시리아 난민캠프

규모면에서는 전 세계 4위, 자타리 난민 캠프

  요르단은 많은 난민과 이주자를 받아들인 국가 한 곳이다. 1948년 발생한 1차 중동전쟁(아랍-이스라엘 분쟁) 이후 1973년 4차 전쟁까지, 수십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요르단으로 이주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었으면 좋았겠지만 2011년 시리아에서 내전까지 발생했다. 시리아 내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바로 어제 이스라엘이 이란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5차 중동전쟁이 시작될까 두렵다. 휴전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이런 기사가 전혀 달갑지 않다.


  다시 난민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요르단 인접 국가에서 여러 전쟁이 발생하였고, 당연하게도 많은 팔레스타인, 시리아 사람들이 요르단으로 이주했다. 2023년 기준 UNHCR(유엔난민기구,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에 등록된 난민만 약 72만 명, UNRWA(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United Nations Relief and Works Agency for Palestine Refugees in the Neareast)에 등록된 난민은 약 220만 명이다. UN은 요르단에 약 330만 명이 넘는 이주자가 있다고 추정한다. 요르단 인구가 약 11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1/3 가량이 이주민, 난민, 망명자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요르단에서 업무를 하며 난민 관련 자료를 자주 접했다. 난민 캠프, 난민 학생 대상 교육 시설, 직업 훈련소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암만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자타리 캠프(Za'atari camp). 자타리 캠프는 시리아 내전의 영향으로 2012년 지어졌고 지금은 요르단 최대 규모 캠프이다. WFP 홈페이지에서 규모가 큰 4곳의 난민 캠프 목록을 본 적이 있다. 가장 큰 곳은 약 88만 명의 로힝야족을 수용한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쿠투팔롱 캠프(Kutupalong Cox's Bazar Camp)였다. 그리고 4위에 약 8만 명을 수용한 요르단의 자타리 캠프가 있었다. 수용 난민 수가 10배 이상 나서 요르단 난민 캠프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인구가 1억 7,470만, 요르단 인구가 약 1,10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요르단 난민 캠프가 절대 작은 규모는 아니다. 참고로 사업가이자 요리연구가 백종원이 키우고 있는 예산군의 인구가 약 8만 명이다.


  업무차 자타리 캠프에 갈 일이 생겼다. UN에서 관리하는 난민 캠프는 현지 보안 경찰이 관리 감독을 하고 있다. UN 그리고 정부 보안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만 캠프 출입이 가능하다. 이날은 한국 정부가 자타리 난민 캠프에서 진행 한 지원 사업을 확인하기 위해 방문했다. 차를 타고 자타리 캠프로 가며 바깥을 구경했다. (원래 차만 타면 자곤 하는데 상급자와 탔을 때는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는다. 물론 아예 안 잔 것은 아니다.) 다른 근교 도시 여행 갈 때보다 색도, 활기찬 분위기도 없는 동네를 지나 캠프 입구에 도착했다. UN 관리자와 보안경찰의 동행 하에 캠프로 들어갔다.


  다른 캠프에 비해 규모도 크고 시설도 잘 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UNHCR의 24년도 자료에 따르면 학교 32개, 1차 의료 지원소 6개, 커뮤니티 센터 58곳이 있다. 약 8만 명이 사는 곳이라 음식점, 옷가게, 문구점, 식료품 가게 등 다양한 가게가 거리에 즐비했다. 거리에는 닭과 개가 캠프 부지를 자유롭게 돌아 다녔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곳은 태권도 수업을 하는 체육관. 세계 태권도 연맹의 지원하에 캠프 내의 학생들이 태권도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인들 방문한다고 미리 준비했는지 갑자기 각을 잡고 "태권!"을 외치며 알찬 공연을 보여주었다. 밝게 웃으며 힘찬 공연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난민 캠프 분위기는 좀 무겁지 않을까'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밝게 지내고 있는 것과 '난민캠프 치고' 시설이 좋은 것을 차치하면 난민 캠프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난민 캠프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대부분은 시리아를 모르고, 요르단도 모른다. 본국에 대한 추억도 없는 데다가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쉽지 않아 캠프가 이들 세상의 전부다. 어른들이라고 하더라도 캠프를 떠나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캠프 거주자에게 제공되는 국제기구의 지원을 포기하고 자유를 찾아 나가기엔 바깥은 춥다. 월세, 식비, 공과금 등 이들이 감당하기 힘들다.


  이어서 난민 거주 공간, 교육 시설, 직업훈련소 등을 시설을 둘러본 뒤 본부로 돌아왔다. 시리아 난민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든 훔무스 샌드위치와 아랍식 샐러드가 점심으로 제공되었다. 차멀미를 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지는 않았다. 제공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결례로 보일까 한 입씩 천천히 씹어 먹고 가방에 챙겼다.


  암만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아이들이 여러 나라에서 지원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길. 비록 캠프 안에서의 꿈이 사치같이 느껴질지라도 꿨으면 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슬펐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난민 캠프 방문 보고서를 작성할 뿐. 전문적 교육을 받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업을 이행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했다. 집에 돌아와 식은 샌드위치를 꺼냈다. 바로 따뜻하게 데워서 한 입 먹었다. 암만 길거리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맛이었다. 맛은 있었지만 어쩐지 속이 편하진 않았다.




  그보다 다음 게시 예정글이 요르단 암만 고급 식당 방문기다. 난민 캠프 방문한 다음에 고급 식당 방문기라니... 어쩔 수 없다. 쓰기로 했으니 써야지.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

  

이전 26화 요르단 물가를 알아보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