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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Mar 27. 2022

상큼 시큼한 유럽 배낭여행 -0-

오래 묵혀둔 이야기

 2012년도 두 번째 수능을 보았다. 그다지 원하지 않던 대학교에서는 합격 통지서와 장학금을 받았으나 원하던 대학교에서는 합격 통지서 대신 추가합격 숫자를 받았다. 이도 저도 아닌 성적이었지만 다른 재능이 없으니 수능에 올인했던 나였다. 원하던 곳에서는 좋은 소식을 받지 못해 뒤숭숭했지만 다 묻어두고 당시 최고 인기 여행지인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기 여행지인 파리, 런던, 베네치아 등의 유명 도시를 여행했지만 여행지에 대한 사전 조사도 안 했으니 아는 게 없었다. 나름대로 유럽 여행 전문 카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행 경로를 짰는데 짧은 기간에 많은 걸 하려 했으니 아주 엉망이다. 유럽에 가서 허공에 돈만 뿌리고 온 '사치 여행' 이 따로 없다. 호화로운 숙소에서 잠을 잔 것도 값비싼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약 500만 원 정도를 썼다. 그러나 많은 여행지 이동하느라 피곤해서 느낀 게 없다. 돈은 돈대로 쓰고 이렇게 망하다니 진짜 망한 여행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에는 '내 나이에 유럽 배낭여행 간 사람 얼마나 있을까'라며 "나 거기 가봤어. 어~ 수능 끝나고!"라며 은근한 허세를 부렸다. 20대 중반에는 가 유럽 여행 이야기를 꺼내도 "나도 그 나라 가봤는데"라는 말 대신 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쓸지 말지 과장 좀 보태서 100번은 더 고민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투자한 만큼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 10년이 지난 2022년도에서야 깨달았다. 이 망한 여행기를 풀 자신감이 생겼다. 유로 환율이 1500원, 파운드 환율이 1800원 대일 때 떠났던 값비싼 여행. 인기 도시 유명 관광지만 찍고 온 여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성비보다 가심비다 이 말이야! 그때는 만족했다고! 그래서 풀어본다. 망한 여행기.


 나는 입맛이 없을 때 상큼한 맛이 도는 음식을 먹는다. 식초를 넣은 비빔국수나 오이 무침 등을 먹고 나면 기운이 난다. 그런데 너무 익은 김치의 시큼함 다르다. 분명 새콤한데 기분이 좋지 않다. 10년 전의 첫 유럽여행이 딱 그렇다. 떠올리면 반짝이는 에펠탑을 처음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덜덜 떨며 들어간 식당에서 일본인이 아닌 아시안이라며 문전박대당했던 기억이 동시에 떠오른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여행이 따로 없었다.  제목은 <상큼 시큼한 유럽 배낭여행>으로 정했다(가제다. 나중에 바꿀 수 있다).


 10년이 지나 쓰는 여행 추억이라 약간의 기억 보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다행히 그때도 기록하는 습관이 있어서 여행 중 일어났던 이야기를 잘 기록해뒀다. 일기장 가계부도 있고, 블로그에 써둔 사진과 글도 남았다! USB가 고장 나서 사진이 조금 날아가서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장소는 없지만 '첫 유럽 여행'이라고 들떠서 모아둔 각종 박물관, 비행기표, 지하철표, 뮤지컬 관람표 등이 꽤 남아있다. 최대한 반짝이 보정 없이 이야기를 써야지.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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