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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Mar 23. 2022

12. 대충하면 망한다고?

대충해도 괜찮을 때도 있다

아이릿의 일상 행복 찾기

(일상 행복 찾기는 자주 우울함을 느끼던 아이릿이 찾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씁니다.)

#11. 대충하면 망한다고?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서 취업센터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의심도 많고 예민한 내 성격에 맞는 맞춤식 조언을 해주시는 취업 전문 상담사가 상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성격검사를 통해 내 성격 유형을 알아보았다. 완벽주의 성향이 너무 높게 나왔다. 결함이 없이 완전하다는 뜻을 지닌 완벽. 제품이라면 상품성은 높겠지만 이게 인간인 나한테 있는 것은 문제다. 완벽하지 않은, 완벽해질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제출하는 데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장점으로 쓸 수 있는 성격이나 대외활동 경험이었는데 "이게 장점이 된다고요? 이런 것도 써도 된다고요?"라는 속 뒤집어지는 말로 상담사를 괴롭혔다. 그렇게 괴롭히고 자기소개서만 수 십장을 썼는데 취업에 실패한 채 졸업을 했다.


 졸업 후 친구들은 각자 일을 하며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회사에서 원하는 것은 스펙 좋고 사회적인 성격에 빠릿빠릿한 사람인데 나는 아니었다.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였다. 제대로 된 스펙을 쌓겠다고 준비하며 몇 년이 지났고, 제대로 된 돈벌이를 못했다. 아빠에 이어 곧 엄마의 환갑.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취업 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했다. 정부에서 위탁 관리하는 그곳에서도 처음으로 진행한 것은 성격유형검사와 적성검사였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더니 몇 년간 백수로 지내면서도 완벽주의 성향을 버리지 못했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은 상태였다. 상담사는 완벽주의 성향을 낮춰야 스트레스 지수를 낮출 수 있을 것 같다며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게 쉽게 될리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다(죽고 싶다는 얘기를 쉽게 하면 안되지만 당시엔 그랬다). 진짜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글쓰기 수업이라도 해보자며 수업을 신청했다가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마주했고 결심했다. 대충 살아보기로.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날 보며 남들은 "이제까지 대충 살았는데 뭘 더 얼마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내 딴에는 완벽해지기 위한 준비단계였다. 그 단계에 갇혀 '취직도 못했는데 이걸 해도 되려나, 저걸 사도 되나.' 하며 행동을 통제했다. 대충 살기로 결심한 뒤 며칠이 지나서야 그런 통제를 풀어줬다. "제대로 된 편집 능력을 기르면, 그림을 잘 그리게 되면, 글쓰기 실력이 늘면 할 거야!"라며 미뤘던 것을 하나씩 해나갔다. 더 다듬은 뒤에야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우스 두세 번을 누르니 끝이었다. 내 그림이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이트에 올라갔다. 수년간 미뤄왔던 것인데 너무 간단해서 허무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런 영상, 그림 그리고 글에도 공감, 덧글, DM으로 관심을 보여줬다. 엉망인 것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완벽한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수정과 연습으로 개선되는 게 보이니 준비만 하던 때보다 즐거웠다.


 난 앞으로도 완벽해질 수 없다. 하지만 나아질 수는 있다고 믿는다. 대충이라도 하니 개선해야 할 것들이 보였였다. 계속해서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며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완벽은 아니어도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마음에 드는 것도 하나 정도는 나오겠지! 

 

 오늘도 이렇게 엉망진창 글을 써서 발행한다.


 완벽하지 않아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우선은 하자. 대충이라도 하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생각을 내놓기 전에 내가 내놓자. 젊었을 때 괜찮은 실수나 실패를 많이 하자. 대충하기로 결심한 나는 대충한 걸 사람들에게 보이면 후회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대충이라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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