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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Feb 06. 2024

5. 우리집 쓰레기를 버려주는 사람이 있다.

정수기 물도 갈아준다.

암만 거리의 쓰레기통. 저 양철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면 된다.

  4화에 썼듯 요르단에서 집을 구해서 산다면 무조건 집주인을 통해 하리스(Haris)를 소개받는다. 우리나라 건물 관리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는데 완전히 같지는 않은 듯하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하리스에게 월마다 돈을 지불하고 마당 관리를 맡긴다. 전기나 수도 등 집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집주인이 아니라 집주인 대리인인 하리스에게 연락을 하면 된다.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등도 하리스에게 지불한다.* 주택 관리인보다는 집주인 대리인인 것 같다.


  집주인 S는 내가 짐을 옮기고 이사 온 뒤 요르단 생활을 위한 기본 정보를 알려주었다. 시작은 한국에 없는 하리스 문화 배우기. 집주인 S는 대부분의 하리스는 마쓰리(Masri, 아랍어로 이집트인)이며, 동네 주택 앞 계단이나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남자들 대부분이 마쓰리 하리스라고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이 하리스 업에 많이 종사하는 듯했다.(시리아인과 이집트인이 요르단의 3D업종에 종사한다.) 


  하리스의 출신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하리스의 업무에 대해 알려주었다. 

  "아이리스, 하리스가 하는 일 알려줄게요. 우선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문 앞에 내놓으면 돼요. 직접 할 필요 없어요. 부엌에 20L짜리 아마도 20L일 텐데, 물 다 마시면 그것도 문 앞에 두면 되고요. 아! 우리 주택에서 일하는 하리스 이름은 아샤예요. 여기 번호부터 우선 저장해 놓을까요. 아, 정수기물은 빈 물통 내놓으면 아샤가 와서 새 통 가져다줄 거예요. 아샤한테 직접 문자 보내도 되고요. 더 궁금한 거 있어요?"

  "아뇨. 지금은 없는데 나중에 생기면 여쭤볼게요."

  "아, 하리스비는 월 10JD니까 관리비 낼 때 같이 주면 돼요. 물은 3JD고요."

  "네, 설명 감사해요!"

  "앞으로 요르단에서 잘 지내요. 불편한 거 있으면 저한테 바로바로 얘기하고요."

  "네, 그럴게요."

  새로운 세입자 불편함 없이 살게 하려던 집주인의 배려는 내 심적 '불편함'보다 가벼웠다. 남한테 내 쓰레기를 버리도록 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심지어 20리터짜리 물통도 바로 옆 창고에서 가져와서 내가 가는 것이 편했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 문화라 다른 사람이 신발 신고 부엌에 들어오게 하느니 내가 노동을 하는 편이 나았다. 한 10일 정도 내 쓰레기 내가 버리고, 내 물 내가 채우는 생활을 한 것 같다.


  어느 날 퇴근 후 집주인 S를 만나 요르단 적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S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리스, 식사는 잘 챙겨 먹어요?"

  "네, 잘 먹고 있어요. 그리고 S가 음식 잘해줘서 요르단 음식에 빠르게 적응했는걸요.(집주인 S는 저녁식사에 나를 초대해 종종 밥을 먹여주었다.)"

  "그럼 다행인데... 왜 쓰레기가 안 나오나 해서요."

  "네?"

  "출근하면서 문 앞에 쓰레기 내놓으면 된다고 했었잖아요. 어제 하리스가 그러더라고요. 아이리스가 쓰레기를 안 내놓는다고."

  불편함 없이 살게 해 주려는 S에게 '누가 내 쓰레기를 갖다 버려주는 것도 익숙지 않고, 신발 신고 들어오게 

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낫다'라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S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어요. 그런데 아이리스는 하리스 값을 지불했잖아요. 그리고 요르단에서는 하리스가 그런 일을 다 해줘요. 그러니까 문화 체험 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내놔요. 요르단이 신발 신고 다니는 문화지만 불편하면 얘기해둘게요."

  "아뇨! 안 그래도 돼요. 이제부터 쓰레기는 내놓을게요. 물도 하리스한테 이야기할게요."

  S에게 내 불편함을 들켜버렸다. 앞으로 나는 편하게 쓰레기도 내놓고, 정수기 물도 교체해야 한다. 한동안 마음은 불편하겠지만 몸은 편하겠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서 마음도 몸도 다 편해질 것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그리고 몇 주 후, 출근하면서 쓰레기를 내놓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다. 대신, 하리스가 우리 집 들어올 때는 현관에 신발을 벗고 부엌에 들어와 물을 갈아준다. 손님용 슬리퍼를 줘도 신지 않는다. 내 마음 편하고자 남을 불편하게 만들다니. 11개월 뒤 S의 집을 떠나는 날까지 저것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괜히 얘기했어... 괜히 얘기했어!


*대부분의 친구들은 하리스한테 직접 공과금을 지불했다. 나는 집주인과 같은 건물에 살았기 때문에 집주인한테 직접 지불했다. 일부는 아랍은행 계좌를 열어 공과금을 자동이체로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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