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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릿 Feb 07. 2024

6. 흡연자들의 천국 요르단

비흡연자는 웁니다 엉엉

식탁마다 올라가 있는 재떨이

  담배냄새가 싫다. '좋아하는' 사람이 담배냄새 폴폴 풍기며 들어오면 좋아하는 감정이 짜게 식어 '좋아했던' 사람이 될 정도로 싫다. 간혹 온라인에서 '저 배우 담배 피우면 섹시해 보이지 않냐, 멋있어 보인다' 이런 글 이해 불가. 그 사람이 현빈이든 공명이든 흡연자면 다 싫다. 


  이런 내가 흡연자의 천국에서 살게 되었다. 이 결론은 22년 7월 17일 요르단 공항에 도착하여 (임시) 숙소 서류 작성, 한 달간 지낼 방에 입성하자마자 내렸다. 12시간도 안되어 '이 나라는 흡연자가 많은 나라야'라고 결론 땅땅. 숙소에서도 담배, 식당 안에서도 담배, 카페에서도 담배. 거리의 사람들도 다 담배!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 사무실, 공공 체육시설에서도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담배 냄새 맡을 때마다 부지런히 짜증 내다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요르단의 카페, 식당, 회의실, 개인 사무실에 공통적으로 있는 물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재떨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집에 김치를 보관하기 위한 김치냉장고가 있다면, 요르단엔 담뱃재를 놓을 재떨이가 있다. 음식과 기호식품을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더 좋은 비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80, 90년대 드라마, 영화에서 누구를 가격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는 것만 보았던 그 재떨이는 요르단에서 본래의 용도로 잘 사용되고 있었다.


  요르단에 대해 아는 게 없이 왔으니 아랍인의 생활을 이해하고 배움의 자세로 다름을 이해하고 지내려 했다. 요르단 곳곳을 여행하고 현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부 이슬람 문화도 이해했다. 심지어 일부다처제까지도. 하지만 입국한 날부터 귀국하는 날까지 유일무이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요르단의 흡연문화다. 현지인 친구들은 말한다. 자국의 낮은 임금, 양질의 일자리 부족 등으로 삶이 퍽퍽하여 담배를 피운다고. 담배를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라나.


박물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담배냄새를 혐오하는 내가 흡연자들의 천국에 왔다니."라며 반년 넘게 현실을 수용하지 못했다. 맛있는 타코, 샤와르마, 피자, 고소하고 달달한 쿨라주 본연의 맛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다. 담배 냄새 없이! 담배 냄새에 적응된 것 같다가도 외식 후 혀끝과 옷 섬유에 남은 것이 맛있는 음식 냄새가 아니라 담배 냄새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수십 년 동안 한국에서도 익숙해지지 못했는데 요르단에서 갑자기 익숙해질 리가. 그렇다면 요르단에 살면서 담배냄새를 피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없다. 정말 없다. 1년간 찾아보려 했지만 안 나가고 집에 있는 것만이 답이다. 관광지에 놀러 가고, 외식을 하면서 담배냄새를 피할 방법은 없다. 흡연자가 하루 평균 13개비를 피우는 우리나라에서도 담배냄새를 안 맡기 힘든데 하루 평균 23개비를 피우는 요르단에서 가능할 리가. 요르단에 도착하자마자 깨닫지 않았는가. 이 나라가 흡연자들에겐 천국 비흡연자에겐 지옥이라는 것을. 길빵, 실내흡연, 물담배(후카, 시샤) 등 모든 것이 허용된 곳, 요르단. 이들이 여러 종류의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은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천국은 아니다. 나만 담배 연기를 지옥 같다 느낀 건 아닐 테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담배 냄새에 아주 부지런히 반응했다.


  회사 상사분은 내가 몇 개월이 지나도 담배냄새로 힘들어하는 걸 보고 한국도 실내흡연이 금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다. 요르단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니 그만 힘들어하고 이 나라의 미래를 두고 보자는 의미로 해 준 말이지 않을까. 그 얘기에 놀라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 실내흡연금지법이 2015년에야 이행되었더라. 요르단이 2020년 시행했으니 10년 차이도 나지 않는다. 법이 잘 이행되어 2024년 요르단에 놀러 가거나, 거주하게 될 사람들은 담배냄새로부터 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흡연 문화가 개선되면 나도 나중에 놀러 가서 담배냄새로 짜증을 덜 내겠지. 지금은 흡연자의 천국이지만, 이들에게도 진정한 천국이 와서 비흡연자 천국으로 바뀌면 좋겠다.*


여담)

현지인 친구들한테 "요르단도 공공기관, 식당, 카페 흡연 금지던데 왜 다 피는 거야?"물어보니 "요르단 사람들 담배 못 피우게 하면 거기 안 가서 가게 망할걸. 안 그래도 장사 잘 안되는데 누가 하겠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내금연의 성공 여부는 경제 부흥 여부에 달린 것인가.


*흡연자들의 담배 피우는 생활이 지옥이라는 뜻이 아니다. 낮은 임금에 허덕이며 식비보다 담배값을 더 쓰는 사람들에게 흡연이 낙원이나 천국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비흡연자들이 천국에서 산다는 뜻도 아니다. 담배냄새 안 맡아서 천국이라 느낄 정도로 행복하다는 의미의 비유다.


1년 동안 요르단에서 생활하며 익힌 담배냄새 피하는 방법(흡연자는 못 피하기에 크게 유용하진 않다.)


대중교통

버스: BRT라는 버스를 이용한다. 여자 혼자 버스를 타는 것보다 남자 한 명 데리고 타는 것 추천. 나는 동료 따라서 딱 한 번 타봤다. 애초에 아랍어를 구사하지 못하면 현지 작은 버스는 못 탄다.


택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노란 택시 대신 우버(Uber)나 카림(Kareem)을 이용한다. 비싼 택시를 이용하면 담배를 꺼달라고 그나마 편하게 부탁할 수 있다. 담배값이 비싸고 임금이 낮아 그냥 꺼달라고 하는 것은 미안하기도 하여 종종 소액의 잔돈을 더 드리곤 했다.(필수 아님)


고속버스: 대부분의 승객은 버스 내 흡연을 자제한다. 세 번 타는 동안 전자담배 피우는 사람 한 번 봤다. 암만-페트라, 암만-아카바 이동은 제트버스 추천하는 편.


식당과 카페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흡연자를 피하기는 쉽지 않다. 흡연자가 있으면 최대한 빨리 먹었고, 가능하면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먹었다. 고급식당에 가면 나을 줄 알았는데 똑같다. 실내흡연 금지인 국가에서 온 외국인마저도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른다더니 실내흡연을 바로 받아들이더라. 좋은 식당에 갈 때는 금연석이 있는지 물어보면 좋다. 금연석이더라도 물담배 피우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는 있다. 담배가 아니라 후카라나...


카페는 쇼핑몰 안에 있는 카페 또는 금연 카페를 찾는다. 대부분의 카페가 흡연 허용이라서 찾기 쉽지 않지만 그나마 쇼핑몰엔 전자담배 피우는 사람만 있지 궐련형 피는 사람은 못 본 듯. 압달리, 타지몰 내 카페로 다녔다. 아니면 스타벅스나 동네 카페.


회사

내가 있던 곳은 한국회사라 실내 흡연 금지. 현지 사업 관련 회의에서는 담배냄새를 피할 수 없다. 현지 회사는 대부분의 사무실에서 담배냄새가 난다. 회의 있는 날에 입는 재킷이 있다. 담배 냄새 먹는 옷은 하나로 족하다는 느낌으로 살았다.


*2019년 한국은 남성 14개비, 여성 8개비 하루 평균 11개비.



우리나라의 실내흡연 금지 시행


  우리나라도 1990년 말까지는 실내에서 자유로운 흡연을 했다고 한다. 2013년 공공장소 전면금지, 2015년 전국적으로 실내흡연 금지 시행령이 발효되었다. 대학교 입학하고 몇 년 뒤에야 실내 흡연 금지가 시행되었다는 부분이 놀라웠다.


  요르단 또한 보건법에 의거하여 실내 흡연을 금지하고 있다. 2020년 권련형 담배와 물담배 실내흡연 금지, 2023년도에는 전자담배 실내흡연 금지로 확대되었다. 아직 시행된 지 얼마 안 되어 이행이 잘 되는지는 모르겠다. 2022-2023년 요르단의 카페, 식당, 쇼핑몰, 버스, 체육관 등 모든 곳에서 금연(NO SMOKING)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금연 표지판 주변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금연 표지판보다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딱 한 번이지만 암만에서 페트라 가는 JETT 버스*에서 내 옆에 앉은 한 아주머니는 인공적인 과일향이 나는 전자담배를 폈다. 궐련형 담배만큼 싫은 인공적인 향. 그 누구도 제재하지 않았고, 나는 3시간 넘는 이동시간 동안 전자담배 냄새와 피곤에 절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흡연자들이여 흡연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말아 주세요. 버스 정류장이 금연구역인걸 아시나요. 그대들이 피운 담배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지 말아 주세요. 작은 불씨 하나로 큰 불이 날 수 있고, 쓰레기가 쌓여 담배꽁초 산이 됩니다. 그건 누가 치우나요. 본인 쓰레기는 본인이 알아서 치우는 선진 시민이 되어주세요. 제발. 침도! 침도 아무 데나 찍찍 뱉지 말아 주세요... 더러우어오.


*요르단의 유일한 고속버스


정보 출처:

https://en.royanews.tv/news/46360/2023-11-11#:~:text=Prime%20Minister%20Bisher%20Al-Khasawneh,ban%20to%20preserve%20public%20health.

https://www.easylaw.go.kr/CSP/CnpClsMain.laf?csmSeq=908&ccfNo=4&cciNo=1&cnpCls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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