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생활 약 한 달 동안은 회사분들과 외식을 자주 했다. 멀리 나가지 않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얻어먹고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지만 재미있었다. 회사 근처에는 외국계 회사가 많아 점심시간에 식당에 가면 요르단 사람보다 외국인을 더 자주 보았다. 사무실에서는 볕을 쬐기 쬐기 힘들어서인지 대부분 실내보다 실외에 앉아 식사를 하곤 했다.
한 달이 지나 월급이 들어왔다. 요르단 물가가 저렴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밖에서 밥 사 먹는 것은 꺼렸다. 회사에서도 대부분 도시락을 싸 오거나,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외식도 해봤자 보통 5000원~1만 원 이내에 주문할 수 있는 맥도날드, 샤와르마, 써브웨이 정도. 그러다 3개월 차부터 지출이 어느 정도 나가는지도 파악이 끝나 종종 외식을 하기 시작했다.
현지인 동료들한테 추천받은 식당을 주로 다녔다. 10년 전에 비해 한국이 음식과 드라마 등으로 좀 더 알려져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한국 음식 구하는 건 식은 죽 먹기. 아시아마켓에서 농심, 비비고, 종가집, 오리온 등의 레토르트식품, 조미료,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수 등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요르단에서 한국음식과 식재료 구하는 이야기는 다음 이야기에 쓸 계획.
친구들과 현지인 동료 추천 식당에 가서 양고기와 구운 치킨을 시켰다. 요르단 식당에서는 직접 구운 얇은 빵 쉬락(shrak)을 무료로 제공해 주는데 그게 꽤 맛있다. 빵에 곁들이기 좋은 훔무스(Hummus), 가지를 으깨서 만든 바바가누쉬(Baba Ganoush), 바바가누쉬에 타히니 소스를 넣어 조금 더 고소하고 부드러운 무탑발(Mutabal) 등을 시켰다. 요르단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금지된 것, 하람*이기 때문에 힘들 줄 알았는데 양고기에 새롭게 눈을 떴다. 무엇보다 요르단은 구이류에 강하다. 우리는 이날도먹는 것에 열중하였고, 다른 사람이 우리 식탁을 봤을 때 무엇을 시켰는지 모를 정도로 접시를 비워냈다.
우리는 주문한 음식을 빠르게 먹었고, 거의 빈 접시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 꽃을 피웠다. 요르단 일상, 회사 생활, 여행 계획 등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 직원의 손이 나타나더니 접시를 가져갔다. 요르단 식당에는 직원이 한 층에 서너 명 있는데 그들이 돌아가며 와서 정리하니 식탁은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이제는 우리가 뭘 먹었는지 모를 정도가 아니라 음식을 시킨 건지, 안 시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나가라는 건가? 그래서 치웠나?"라고 물으니 나보다 요르단에 늦게 온 친구들은 "그런 가봐. 이제 나가자."라며 짐을 챙겼다. 식탁이 치워지자마자 짐을 챙겨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왔다. "손님도 없었는데 왜 나가라고 하냐... 우리가 오래 앉아있던 것도 아닌데"라며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다음 날 회사에서 점심을 먹다 어제 있었던 일이 차별인지 뭔지 궁금해져 요르단 문화에 익숙한 상급자에게 질문을 했다.
"J님. 어제 식당에서 음식을 거의 다 먹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직원이 식탁을 싹 치웠어요. 후식 시켜 먹으라는 거예요? 아니면 그만 얘기하고 나가라는 거예요?"
"아이릿님(웃음) 후식 주문하거나 나가라는 게 아니라 요르단 문화예요. 여긴 식당에서 음식 다 먹은 손님 자리를 바로 치워줘요. 깨끗한 자리에서 편하게 더 이야기하라는 거지 차별도 아니고 강매하려는 것도 아녜요."
"아... 그래요? 저희는 그거 이제 나가라고 그러는 줄 알고 바로 자리 옮겼잖아요."
"아녜요, 아녜요. 배려해 주는 거예요. 다음에는 식탁 치워도 그냥 얘기하고 시간 보내요."
역시 모르는 것은 전문가에게 바로바로 물어봐야 한다. 요르단 식당에서는 손님들이 음식 먹고 난 자리를 깨끗하게 치워주는 것이 일반적이라니. 이 얘기를 못 들었으면 나는 외식을 하면서 '왜 이렇게 쫓아내는 거야. 요르단 식당 박하다 ~ 박해.'라며 자리를 떴겠지. 깨끗하게 치워진 자리에서 편하게 시간을 보내라는 배려를 오해한 채. 사실을 알게된 후부터 정돈된 식탁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디저트 배는 따로 있어 새로운 손님을 바로 받아도 될 정도로 치워진 식탁에서 바로 일어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더는 쫒겨나는 사람처럼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