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릿 Feb 16. 2024

9. 요르단 체류 허가증을 발급받다

나도 이제 요르단 사람

  24년도 BBC 한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권 파워(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세계 2위*라고 한다. 무려 193개국을 별도 비자 발급 필요 없이 입국할 수 있다. 미국 캐나다처럼 방문 전 사전 비자를 발급해야 하거나, 도착지에서 비자를 발급받는 국가도 있다. 도착해서 비자 발급이 가능한 곳이 바로 요르단이다. 요르단 방문 전에 거주증 또는 체류허가증(이까마 Iqama)을 발급하기 위한 일부 서류는 준비했지만 비자까진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퀸알리아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비자를 구매했다..


  입국 시 받은 비자는 30일간 유효하다. 요르단에서 1년 도안 편하게 머물기 위해서는 이까마를 발급받아야 한다. 만약 5~6개월 정도 머물 예정이며 이까마 발급이 번거롭다 하면 비자 만료 전에 인근 경찰서에 필수 서류(거주지 관련 정보 등)를 제출 후 연장 허가를 받으면 3개월까지 머물 수 있다. 한 지인은 3개월이 되기 전 인근 국가에 나갔다가 다시 입국 비자 받아서 들어왔다.


  최초 입국 비자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회사를 통해 이까마를 신청했다. 필수 서류는 요르단 내무부에서 확인 가능하다. 나는 회사에서 전부 처리해 줘서 요구하는 서류만 제출했다. 한 달 이내 처리하지 못해 경찰서에서 방문하여 거주 관련 서류부터 처리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지문을 등록했다. 경비가 꽤 삼엄해서 휴대폰더 전부 제출 한 다음 현지인 직원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양 손가락 지문 등록을 할 때 직원이 내 손가락을 꽤 거칠게 상하좌우로 굴려서 겨우 등록했다.


  지문 등록은 단순 비자 연장을 위해서였다. 이까마를 얻기 위해서는 피를 내줘야만 한다. 마지막 관문인 보건소 방문이 제일 떨렸다. 한국에서도 3차 병원이 있는 지역 그리고 인근 동네에서 살겠다고 얼마나 떠들고 다녔는지 친구들조차도 "아이릿 너는 근교에서는 못살겠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랬던 내가 보건소에 가는 차에서 얼마나 덜덜 떨었는지 상상이 가시는지. 요르단의 보건소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알코올솜도 야무지게 챙겼다. 같이 보건소로 이동하는 회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 오늘 알코올솜도 챙겼어요."라고 말하니 다들 "아이릿님 저희가 가는 보건소가 암만에서 제일 괜찮은 곳이에요. 소독솜까지 필요 없어요.", "솜까지 챙기셨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보건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면서 가방은 안 챙겼지만 알코올솜은 주머니에 잘 넣어뒀다.


  주차장에서 보건소로 가는데 웬만한 맛집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긴 줄이 있었다. 시작과 끝이 어딘지 모를 긴 줄을 가리키며 무슨 줄이냐고 물으니 코로나 검사하는 줄이란다. 우리는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으니 코로나 검사하려고 온 사람들 지나서 지하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알코올솜만 야무지게 챙겼지 마스크는 못 챙겨서 숨을 꾹 참고 지하로 내려갔다. 채혈실은 코로나 검사 줄 바로 옆에 있었다. 현지인 직원이 미리 와스타라는 것을 해둬서 대기 없이 바로 피를 뽑을 수 있었다. 이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요르단이 처음인 나뿐이었나 싶었다.

"누가 먼저 맞을까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어요. 제가 먼저 맞을게요."


  첫 주자를 자처하고서 채혈실에 들어가기 전 주머니에서 알코올솜을 꺼내 껍질을 뜯어 채혈 예정 부위에 문질렀다. 간호사가 내 행동을 보면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채혈을 등지고 잽싸게 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간호사가 시키기도 전에 소매를 걷어 올리고 주먹을 쥐었다. 간호사가 주사 놓을 자리를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렀다. 방금까지 핸드폰을 만지던 손이었다. '혈관 자리 잡고 소독해주려나?' 하며 간호사를 쳐다봤는데 채혈대 위에 소독용 솜이 안 보인다. 간호사가 주사기를 찾는 동안 아까 버리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소독솜을 다시 한번 문질렀다. 주사기를 들고 온 간호사는 아까와 같은 자리를 다시 한번 문질렀다. 소독을 포기했다. 간호사가 주삿바늘을 밀어 넣기 전 안보는 게 낫겠다 싶어 속으로 '악'을 외치며 눈을 감았다. 눈을 뜨니 이미 내 피는 작은 통에 채워지는 중이었다. 주삿바늘을 뺀 자리에서 피가 흘렀다. 의료용 솜이 아니라 인형이나 쿠션에 넣을 법한 솜을 얹어줬다. 흡수가 잘 되지 않는 재질이라 소용이 있나 싶은 솜이었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분들은 내가 채혈 장면을 본 뒤 알코올솜을 부탁했고 나는 그들 손에 솜을 하나씩 쥐어주었다.


  보건소 방문은 오른쪽 팔뚝에 큰 멍과 충격만 남겨줬다. 내 혈액이 요르단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되지 않았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까마가 발급되었다. 현지 직원은 웃으면서 이까마를 가져다주며 "이제 아이릿도 요르단 사람이 거예요(Iris, you're now same with jordanian)."라고 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무실 직원들도 "아이릿, 드디어 요르단 사람이 됐네요. (Now you're Jordanian like us! Congrats.)"라며 축하해 줬다.


  요르단에 온 지 약 90일. 드디어 요르단 왕국에 의해 정식으로 체류를 허가받았다. 이제 요르단 사람 대우받는다! 뭐가 좋냐고요? 페트라 입장료가 50JD에서 1JD가 되는 마법. 한화로 10만 원 하던 입장료가 2천 원이 되는 셈. 슬프게도 페트라에 갈 기회가 많이 없어서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자랑만 해봤다.


  이까마도 1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한다. 그 말인 즉 피를 1년에 한 번씩 뽑아야 된다는 뜻이다.


인스타 구경하기: https://www.instagram.com/i_kiffe/

블로그 구경하기: https://blog.naver.com/kim_eyo  

작가의 이전글 요르단 생활 정보(2) 유심, 쓰레기 처리, 공과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