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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Oct 12. 2016

막대기

10년 전의 나

사람들 마음속에는 막대기 같은 것이 있다. 처음에는 절대 부러지기 싫은 그것은, 살아가면서 부서지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간직하기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마다 여러 개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그런 게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동그랗게 다듬어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비슷한 느낌이다.


나의 막대기는 고등학교 때 만화 그리기를 포기하면서 하나 부러졌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를 깨달았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나를 얽매어 왔다. 대학교 때 사회의 불의에 저항하기를 포기하면서 막대기 하나가 더 부러졌다. 내가 어디까지 나서야 이 사회가 정의로워지는지 감이 오지 않았던 나는 아예 사회에 관심 주기를 포기했다.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의미 있겠다 생각해서 시작한 공무원 고시 공부를 포기하면서는 일의 의미보다는 돈을 선택했다. 사람들 관계에서의 상처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된 직장 생활에서도 작은 막대기 하나쯤 더 부러진 것 같다.


반대로, 부러뜨리고 싶어도 여태껏 잘 안 되는 막대기가 하나 있다. 부모님을 나의 부모님이 아닌, 한 개인으로 보는 것. 한 때 부모님 사이가 안 좋았던 적이 있었는데, 말로는 원하시면 헤어지라, 그래서 엄마가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우린 괜찮다, 시원하게 내뱉곤 했다. 하지만 엄마가 한 마디라도 이혼에 대해 언급하려 하면 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못했다. 온몸은 딱딱하게 굳고, 애꾿은 손톱을 뜯는 거 외에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저 듣는 척 고개만 끄덕끄덕할 뿐, 머릿속엔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다, 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빠를 제쳐두고는 엄마 개인의 행복을, 난 죽어도 진심으로 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밖에서 어른인 척 잘난 척하고 다녀도 나는 엄마 아빠의 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때 내가 엄마를 위해서 막대기를 부러뜨릴 수 있었다면 엄마는 좀 더 행복하셨을까.


부러지지 않은 막대기는 이기적인 걸까, 곧은 것이라고 해도 될까, 아니면 그냥 아직 무작정 어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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