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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Oct 13. 2016

예쁜 내 동생

동생한테만은 항상 '언니가~'라고 문장을 시작하게 된다

드라마든 소설이든, 나는 여동생을 사랑하는 언니에게 그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해버리고 만다. 이내 눈물이 글썽거리고 코가 시큰해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드라마는 그냥 엉엉 울면서 봐버린다. 사고가 나서 뇌사상태에 빠진 동생도 아니고 식물이 되고 싶다며 먹는 것을 거부하는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언니도 엄마도 다독여주고 보살필 줄 아는 어른 동생인데도 그렇다. 


동생과 4살 터울인 나는 어릴 적에 항상 그녀가 귀찮았다. 걔랑은 노는 게 아니라 놀아주어야 했으니까. 나는 절대 좋은 언니가 아니었다. 손찌검도 종종했던 것 같다. 방학 때면 방학 숙제를 대신해 줘야 했고 가족 신문도 나는 두 개씩 만들게 하는 성가진 존재일 뿐이었다. 


동생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다. 물론 이미 다 커버린 동생은 같이 놀 친구도 있었고 학원도 가야 했다. 당시 좋아했던 자우림 노래를 동생은 그냥 그래 했다. 그래도 같이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반강제로 들려줬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아직도 동생과 내가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것이 그때 나의 영향이라고 굳게 믿는다.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걸까. 나는 동생을 뱃속에 품고 있었던 적도 없고 여느 언니들처럼 내가 업어 키웠다는 자각이 없는데도, 동생이 너무 좋다. 그냥 유전자가 25% 정도의 확률로 일치한다는 것뿐인데 우리 참 닮았다고 동생과 함께 껄껄 웃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자꾸 내가 면접을 도와준 덕에 카이스트에 합격했다며 동생의 인생에 개입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하고, 시답잖은 한자 자격증을 동생은 못 땄다고 나와 비교하며 놀리곤 한다. '오빠가~'라는 문장을 지독히도 싫어하면서도 동생한테만은 항상 '언니가~'라고 문장을 시작하게 된다. 


내 동생이 참 좋은 사람으로 컸구나, 생각했던 적이 있다. 과학자로서 본인이 연구하는 게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지 나쁜 영향을 끼칠지 알아야겠다며 인문학 책을 샀을 때다. 물론 동생이 그걸 다 읽었다곤 생각하진 않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생각을 스스로 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아이를 무언가를 가르쳐야 할 아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나도 그녀도 아주 어렸던 많은 순간들을 지나, 그때부터 나는 그녀가 이제 어른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동생이 놀리는 데로 갈수록 엄마와 닮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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