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것
손님이 음료를 다 마신 컵을 갖다주려고 카운터로 다가왔다. 그냥 테이블에 둬도 되는데,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가 어디에 부딪혔는지 쿵 하고 소리가 났다. 나는 혹여나 컵이 깨지진 않을까 후다닥 달려갔다. 그가 떨어뜨린 건 다 쓴 빨대였다. 나는 컵이 아니라 다행이다, 생각하며 휴지를 뽑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빨대와 함께 살짝 흩뿌려진 음료를 보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요, 하고 말하고 그가 손을 닦고 순간 갈 곳을 잃은 휴지에까지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치워 드릴게요.
그가 반납한 쟁반에 빈 컵과 빨대와 더러워진 휴지를 담아 가져왔다. 이건 별거 아닌 일이다. 바닥을 빨리 닦아내고, 빨대와 휴지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컵은 세제를 써서 씻어 두면 되는 일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나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하는, 당연한 일이다.
집에서 반찬 통을 굳이 카페로 가져와 설거지하곤 했다. 내게 집은 먼지가 쌓여 있지 않고 최대한 아무 냄새가 나지 않고 나 외에는 다른 생명체-곰팡이-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집에서 반찬 통을 씻을 때 나는 냄새, 싱크대 거름통에 쌓이는 얇은 파, 참깨 같은 것들이 싫어서 나는 엄마가 기꺼이 해서 갖다주는 반찬도 두 번에 한 번은 거절하곤 했다.
카페에서 나는 그 손님이 머무는 시간 동안 적당한 배경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그가 내 공간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내 책임인 것 같아서 음악 크기도 몇 번이나 조절하고 히터를 껐다 켰다 하고 그가 작은 움직임을 보이자마자 그에게 필요할 법한 물이나 냅킨의 위치를 알려 준다. 그가 내고 간 음료 값에는 그런 배경까지 다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손을 내밀어 더러운 것을 손으로 직접 받고 치웠다.
오늘 멍하게 앉아 카페 벽을 쳐다보는데 지난 크리스마스 때 걸어 놓은 면 포스터와 전나무 가지가 눈에 거슬렸다. 왜 여태껏 저걸 치우지 않았지. 이렇게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장면이라니. 나는 얼마나 게으른가. 저 자리엔 꽃을 꽂아 놓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매주 꽃을 바꾸는 일도 돈이 은근히 드는 일일 게다. 나는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서야 봄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이제야 벚꽃이 피었지, 참. 너무 길고 긴 겨울이어서 봄이 왔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창 바깥에 여태 피어있는 벚꽃 나무를 봤다. 어제오늘 비에도 별로 떨어지지 않은 꽃잎들이 보였다. 그렇구나, 이제 봄이구나. 얼른 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