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금지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여섯 번째 이야기

by 김소윤

2년 전쯤이겠다. 카페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왔던 손님이 다시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때였다. 커피가 맛있었나 보다, 다행이다, 하고. 그중 아침마다 바닐라라떼를 맛있다며 특히 풍성하게 올라가는 거품이 좋다고 하시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향수 냄새가 유독 진해서 그가 떠가고도 한참 잔향이 코에 맴돌았다. 시간이 좀 흐르자 커피를 만드는 동안 나이나 결혼 유무 같은 사적인 것까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출장 다녀오는 길에 샀다며 면세점에서 팔 법한 핸드크림과 립밤이 들어있는 작은 선물 세트를 건넸다. 손사래를 쳤지만 몇 번이나 거절하기도 그래서 받긴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끝까지 거절했어야 하지만 당시는 너무 당황했다. 괜스레 찝찝해서 몇 달 동안 구석에 처박아 뒀다. 결국 핸드크림은 썼고 립밤은 누군갈 주었다.


이해가 안 간 건 그의 의도였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그가 선물을 줄 때는 분명 무언가를 기대하고 줬을 것이다.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이미 결혼해서 애도 있을법한 나이의 남자였다. 30대 미혼의 여성과 왜 친해지고 싶은 거지? 여하튼 나는 그와 친해질 생각이 없었고 그 전과 비슷한 수준의 친절로 그를 응대했다. 머지않아 그는 카페를 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무엇을 원했던 것이고 무엇 때문에 삐져서 카페를 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느낌의 중년 남성이 있었다. 매일같이 이른 점심시간에 둘이 와선 아메리카노와 얼그레이를 시켰는데, 뭐 화내는 것보다는 낫지만 매번 능글맞게 웃는 게 왠지 싫은 손님들이었다. 어느 날은 이제 못 오게 됐다며 아쉬움을 강요했다. 대신 금요일마다 사무실에 오게 됐다며 그때마다 꼭 카페에 들르겠다고 너스레를 떨길래 같이 떨떠름하게 웃어주고 커피를 내리는데, 그들끼리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금요일마다 기다리는 거 아냐?"


점심때 같이 일하는 H양과 나는 기가 찬 기분으로 떨떠름하게 커피를 내밀었다. 사실 나는 그 말이 어이가 없어서 너무 웃겼고 H양은 아저씨들이 왜 저러냐며 불쾌해했다. 더 웃긴 사건은 또 일어났다. 한 시간쯤 뒤, 점심 피크시간이라 한창 바쁜데 그분이 창문으로 고개를 확 들이밀길래 가봤더니 초콜릿을 두 개 건네는 것이다. 아, 저희 바쁘거든요... 정신도 없고 귀찮아서 그냥 주는 데로 받고 어딘가 대충 뒀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가해진 오후에 잠시 볼일을 보고 왔더니 H양이 그 아저씨가 한 시간쯤 있다 또 와서 초콜릿 두 개를 더 줬다는 것이다. 우리 둘은 불쾌하니까 이건 먹지 말자고 협의하고 나중에 혼자 커피를 마시러 온 단골손님한테 입가심으로 내드렸다.


정도를 살짝 지나친 손님의 친절에 어떻게 응대해야 하는가. 수줍게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츄파춥스를 내밀고 가버리던 20대 청년도 있었지만 40대 아저씨의 능글맞은 미소는 정말이지 소름이 끼칠 정도다. 어디 가서 미소 짓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의도가 있는 웃음과 단순히 친절함에서 나오는 미소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나 혼자야 그때그때 내가 알아서 처신하면 되지만 나는 사장이니까 그런 손님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일하는 분들에게 분명히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저분이 오셔서 초콜릿이나 다른 것을 또 주시면 절대 받지 마세요. 불쾌한 선물은 거절하셔도 돼요."


우리는 선물 금지라고 어디 붙여 놓기라도 해야겠다며 깔깔 웃었다.


한동안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예쁜 여성으로 뽑을까 고민했다. 실제로 내가 회사 다닐 때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커피 맛보다도 아르바이트생이 예쁜 곳으로 우르르 몰려가곤 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 공고에 용모단정이라고 써 놓는 것도, 소개팅도 아닌데 미리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한 번도 시도해보진 않았다. 초콜릿 사건을 겪고 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아르바이트생을 뽑아 손님을 오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 예쁜 아이에게 어느 정도의 수작들은 견뎌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단정한 용모에 비용을 더 준다면 그 비용으로 무엇을 견디게 할 것인가.


오늘은 또 같이 무례한 손님 욕을 하다가 H양이 문득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사장님 같은 사장님 처음 봐요, 진짜."


무슨 얘기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나이가 좀 있는 사장들은 손님은 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만 짧게 대답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녀가 레스토랑과 와인바와 카페에서 일을 하며 오랜 시간 다친 마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손님은 왕이 아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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