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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Feb 19. 2019

왜 우냐고 묻지 마세요

거꾸로 해도 커피피커, 다섯 번째 이야기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호흡에 맞춰 정신없이 아침 피크 타임을 보내고 난 오전 느지막한 시간에 가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 해 가는 여자 손님이 있었다. 낯이 익어 다시 올려다보니 올리브영 로고가 박힌 후리스를 입고 계셨다. 작년 어느 날 올리브영에서 봤던 분이다. 여태껏 일하고 계시는구나.

 

카페에서 가까운 곳에 올리브영이 있다. 어느 날 오전 일찍 들렀는데 무언가 낯설어 보이는 40대로 보이는 여성분이 카운터를 지키고 계셨다. 새로 일하시는 분인가 보다, 아르바이트생치고는 나이가 많으시네,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업무 시간에 땡땡이치는 가벼운 마음으로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택배 기사님이 문을 열고 거칠게 상자를 몇 개 들여놓더니 그녀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물건을 지정된 장소에 내놓으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고, 그녀가 곤란한 듯 대답을 하니 기사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건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더 화를 내고는 가게를 나가버렸다. 나는 갑자기 목격한 짧고 시끄러운 사건에 당황스러웠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다시 내 일에 집중했다.


고심한 물건들을 가지고 카운터로 갔더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하고 불렀더니 그 여성분이 급히 창고에서 나오셨다. 휴지로 뭘 닦는 것 같길래 쳐다보니 코가 빨갰다. 아, 택배 기사님 때문에 많이 놀라셨구나... 창고에서 혼자 울다가 나온 모양이었다. 사건도 목격했고 해서 괜찮으시냐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그분은 내 눈을 피하면서 밝게 노력하는 목소리로 계산을 해주셨고 그래서 나도 아무 말 없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지금도 종종 내 카페에서 커피를 사가는 그녀의 표정은 밝고 자신감이 넘쳐서 후리스가 아니었다면 그때의 그녀인 줄 절대 몰라봤을 정도다. 이제 일이 익숙해지신 걸까, 어쩌면 그때쯤 올리브영을 새로 인수한 점장 인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났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작년 한때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있다. 갑작스러운 이별과 그래서 더 심해진 우울증에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아침과 점심 피크 시간이 번개처럼 지나가고 한가로운 오후 늦은 시간만 되면 좁은 가게 안쪽에 혼자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코를 훌쩍이고 있다가도 손님이 오면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달려갔다. 마음은 엉망이고 아무 생각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도 손은 기계처럼 움직여 커피를 뽑았기 때문에 그때만큼 내 직업이 다행인 적이 없었다. 눈과 코가 벌게진 내 얼굴을 보고도 한 번도 왜 우느냐고 괜찮으냐고 묻는 손님은 없었고 나는 또 그때만큼 손님들이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어느 가게 안 쪽에 혼자 앉아 울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모른 척 해주자. 왜 우냐고 묻지 말자.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서러움과 슬픔이 있다. 가끔 적당하지 않은 시간에 남에게 들킨 그만의 아픔은 그냥 모른 척 해주자.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아마 우리는 모두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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