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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Sep 23. 2022

서울과 지방과의 머나먼 거리

우선 '우리' 자체가 별로 없어서.


서울에서 20대를 꽉 채워 보내고 부산에 내려와서 살기 시작한 지 이제 6년 정도 되었다.


태어난 것도 부산이고 고등학교까지 다 부산에서 다녔지만, 대학을 서울에서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도 서울로 올라온 고등학교 친구들이었고 대학교 친구들과 회사 동료들까지 생기면서 30대 초반까지의 내 삶은 통째로 서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부산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님과 심하게 싸운 적도 있었다.


6년 전 회사를 그만둔 뒤 부모님의 권유로 부산에 내려와서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 10년의 공백을 뚫고서도 자연스럽게 연락해서 만날 만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둘 정도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얼마 안 가 일자리를 구하러 서울로 올라가 버렸고 하나는 결혼하고 임신해서 당분간은 만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서울에 살 때는 공기처럼 맞닥뜨리던 어떤 세미나, 모임, 파티 소식들이 사라졌다는 걸 천천히 깨달았다. 겨우 마음에 드는 걸 찾아 몇 개월이나 다녔던 독서 모임은 모임장이 혐오 발언을 하는 바람에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이성적으로 좋아하기까지 한 남자 서점 주인이었는데 전쟁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들과 그의 생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사귀기가 너무 어려웠다. 부산대를 나온 친구에게 부산에 젊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갔냐고 물어봤더니 보통 부산대 정도 나오면 거제나 울산에 있는 대기업으로 일하러 간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부산에는 대기업이 없다.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일자리가 있어 봐야 대부분 중소기업 수준이다. (통계 있으면 좋겠다... help me)


센텀 한복판에서 카페를 운영하면서 일자리 수준을 체감했는데, 스타벅스를 제외하고는 주변 아메리카노가 1500원 수준이었다. 원두를 좋은 걸 쓰느라 처음에 3천 원으로 책정했던 내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2천 원으로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카페를 정리하고 시험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는데 사람이 돈을 아끼게 되니까 제일 먼저 지갑을 닫는 게 군것질 거리더라고. 그 때야 제대로 깨달았다. 여기, 건물만 번지르르하지, 안에 사람들은 가난하구나.


일자리가 없으니 문화생활도 넉넉할 리 없다. 그나마 부산은 영화 산업에 투자를 많이 해서 영화 관련 세미나도 들을 만한 게 가끔 있고 영화의 전당이 있어 상업 영화가 아닌 영화들도 어렵지는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지방에서 최고 수준일 것이다. 서울에 살 때는 회사를 마치고든 새벽녘이든 피카디리, 압구정이나 사당에 독립영화 상영관 어디든 시간을 맞춰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었는데. 지방? 어디 이름 모르는 지방 CGV 앱을 한번 열어봐라, 상업 영화 말곤 볼 만한 영화가 없을 것이다. 문화생활의 자유 같은 건 서울에만 존재한다.


문화생활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일도 별로 없었다. 데이팅 앱을 깔아 도전하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은 적은 한 번도 없다. 데이팅 앱으로 남자를 만날수록 섹스하자는 남자는 이렇게 많은데 제대로 된 남자는 없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아직도 한두 달에 한 번은 서울에 간다. 시험공부를 할 때 제외하고는 거의 빼먹지 않고 서울엘 갔다. 아직도 서울 이태원의 골목골목이 정겹고 강남에 가면 마치 내 고향(전 직장이었다) 같고 홍대에 가면 신이 난다. 그곳에서의 기억들 때문도 있지만 아마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다양한 이벤트, 파티 소식들 때문일 것이다. 부산도, 다른 지방들도 우리의 마음을 뛰게 할 순 없을까. 우리끼리 모여서라도 뭔가 해볼 수 있을까 했지만 쉽지 않더라.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우선 '우리' 자체가 별로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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