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몰라서 그런 건 없다
순경상도 남자인 우리 아빠는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선지 골프든 당구든 항상 동기 아니면 후배들과 어울린다. 막내로 태어나 평생 형님 하면서 살다 보니까 형님 소리를 듣는 게 그렇게 좋나 보다며 동생과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아빠는 60이 넘은 지금 나이에도 친형들에게는 큰소리 한번 못 내고 말을 잘 듣는 편이다. 남자 사이에서의 위계란 이런 건가, 혀를 내두르고 마는데, 아무튼 그래서인지 놀 때만이라도 아빠는 형님 소리를 듣는 게 좋은 모양이다.
내가 부산에 내려와서 막 카페를 오픈했을 때, 아빠는 주변에 당구 약속이 있으면 후배를 카페에 꼭 데려와 커피를 강매(?)하며 나를 소개하곤 했다. 후배 아저씨는 주로 첫마디를 '너네 아버지가 나를 젊을 때 정신 차리게 도와주셨다'던가 '나를 많이 도와주셨다'라고 시작하는데 번역하면 꼭 좋은 뜻만은 아닌 것 같아서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렇게 한두 마디 주고 받고 나면 침묵이 흐른다는 것이다. 딱 봐도 서른이 넘어 보이는 장성한 선배 딸아이가 난데없이 고향에 내려와서 카페를 한다고 하면 나이도 궁금할 테고 결혼이나 애인은? 이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잖아? 근데 다들 하나같이 어색한 웃음만 짓고 불편한 침묵을 견디더라도 나에게 아무것도 묻질 않더라고.
몇 명을 만나서 인사하면서부터 나는 깨달았다. 저 아저씨들 그 질문들이 무례하다는 걸 아는구나. 그래서 선배 딸을 만났을 때는 감히 물어보지 못하는구나.
요즘 아저씨들은 갈수록 그런 질문들이 얼마나 무례한지 정말로 아는 것 같다. 아빠 후배들 뿐만 아니라 아빠 친구분들도 나를 만나면 그런 질문들을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인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빠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그게 좋다. 세대가 달라서, 어른들이라서, 뭘 잘 몰라서 그런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