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퇴직 일기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좋은 일이었다. 모아둔 돈도 어차피 없었는데 퇴직금 패키지로 두둑하게 한몫 챙겼으니 회사를 억지로 일 이년 더 다닌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내가 느끼는 감정은 홀가분함과 전혀 비슷하지도 않았다. 첫날엔 두려움이 몰려왔다.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노래가 이어폰에서 나오면서, 그것도 버스 안에서 나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7살 이후 처음으로 소속이 없어진 것이다. 휴학생도 학생이었으니까, 정말 나는 울타리 밖을 처음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두 번째 날엔 막막함이 밀려왔다. 어쩌지, 나 아직 준비된 게 없는데. 6달이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망망대해에서 떠다니는 두려움이 섞인 막막함. 3일째 부터는 걱정이 됐다, 현실적으로. 나, 뭐 먹고살지?
한 달 정도 송별회를 핑계로 술로 시간을 보냈다. 새벽 서너 시까지 술을 먹고 다음날 오후 네시까지 잠을 자고 일곱시 약속을 위해 씻고 화장을 했다. 다행히 밥이나 술을 같이 먹어줄 사람들은 충분했다. 4년의 직장 생활이 헛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들 바쁜 낮 시간에 오는 무기력함은 지독하게 강했다. 우루사의 곰보다도 무거운 그것을 떨치고 일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고, 한 달이란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어느 날 금요일 저녁, 목요일 먹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친구가 한 이야기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 자체가 퇴직을 아직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런 거란다. 아직 마음이 회사에 있으니까, 지금 힘든 거란다.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이제 슬슬 괜찮아지라며, 지나가듯 이야기했는데 나는 내용보다 담담한 그의 말투가 더 고마웠다.
그러고도 일상의 부재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재난 소설이나 액션 영화에 많이 나오지 않는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갈구하는 슈퍼 히어로. 할 게 없진 않았다. 글도 써야 하고 팟캐스트 편집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책도 읽어야 했고 운동도 해야지. 그래도 일상이 필요했다. 할 일. 해야 할 일. 나라는 인간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이제 온전히 내 힘으로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돼야 한다. 필요하다니까 거창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하다는 건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일 뿐이다. 어디까지 돈을 벌 수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퇴직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