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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Apr 29. 2016

집안일의 남녀 분담

모든 일은,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

나는 맹세코, 형광등도 갈 줄 몰라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여자가 아니다. 사실 지금까지 딱히 형광등 갈 일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아버지가 있었고, 기숙사 지원팀 아저씨들이 있었고, 또 남자친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자취방 형광등은 원래 구성인 세 개가 다 불을 밝히지 못하고 하나만 겨우 내 방을 밝혀주고 있었다. 사실 내가 두개가 다 꺼진 것을 눈치챈 게 한 달 전쯤이지, 하나부터는 꽤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매번 주말을 전구를 사 와야지 벼르면서 그냥 보내다, 집을 뛰쳐나가 바로 새 것을 사오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샤워 중, 화장실 형광등이 나가버린 것이다! 공포라기 보단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담담함이라는 감정이 왠지 좀 서글펐다.


형광등을 덮는 갓이 유리로 되어 꽤 무거운 바람에 나사를 돌려 빼는 작업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렸다. 자연스레 생각보다 많은 손가락의 힘과 팔 힘이 요구되는 이런 대부분의 집안일은 남자에게 맡길 만한 것들이 더 많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순수한 ‘힘’이 요구되는 집안일이 얼마나 많은가! 마룻바닥 청소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실의 타일 사이에 낀 물 때,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사이의 찌든 때, 모든 때는 아무리 대단한 세제를 부어대도 엄청난 힘이 아니면 깨끗이 지워지지 않는다. 연약한 여자가 하루 종일 걸일 일도, 힘센 남자가 거들면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깥일은 남자가, 집안일은 여자라는 고리타분 적이고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평등사상을 굳이 역설하지 않더라도 역학적인 효율면에서도 분명 잘못됐다. 모든 일은, 잘 하는 사람이 하는 게 좋겠다.


여하튼 새로 간 형광등이 방을 세 배로 밝혀주는 바람에 나는 갑자기 내 방이 낯설다. 내 이불의 페브릭 질감이 저런 느낌이구나, 새삼 쳐다보게 된다. 괜히 이곳저곳 치워놓게 된다. 마음까지 환히 밝혀진 느낌이 이상하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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