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괜찮아'와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어' 사이의 그것
물건은 모름지기 자기가 놓이고 싶어 하는 곳에 놔두어야 한다. 비록 그곳이 일정한 장소가 아닐지라도, 다음번에 내가 그 물건을 원할 때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지라도. 어느 정리의 달인으로부터 모든 물건의 ‘자리'를 지정해주는 것이 깔끔한 정리 정돈의 기본 원칙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머리 고무줄, 귀걸이, 펜 등의 일상 용품의 '제 자리'라는 것의 개념은 나에겐 통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가 없다.
나에게 청소라는 것은, 하루하루 바닥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정도는 괜찮아의 '이 정도'와 지금 당장 하는 이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무슨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어의 '무슨 일’ 사이 정도에 있다. 무기력 한 내 마음을 차곡차곡 방바닥에 떨어뜨려놓는 일상이 지난 다음에, 이 마음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반짝하고 들 때 나의 허물들을, 체취들을, 옷걸이에 걸고, 쓰레기통에 담아내곤 하는 것이다.
정말 삶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함, 즉 부엌 싱크대의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거나, 화장실 불이 샤워 중에 꺼져버린다거나, 혹은 그 많던 머리 고무줄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해서 침대 밑을 들여다본다거나 하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다. 눈이 잘 닿지 않는 데스크톱이나 모니터에 쌓인 먼지, 궁금하지도 않은 침대 밑을 청소하는 것은 그야말로 청소의 동기 중에서 가장 어마 무시한 '실연'정도에 맞먹는 커다란 사건인 것이다.
오늘 바닥과 부엌 청소, 심지어 데스크톱 위에 쌓인 먼지까지 청소한 오늘은 아무래도 여기까지 인 것 같다. 화장대 밑에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가방들, 각 서랍에 꽉꽉 차있는 쓰지 않는 립스틱, 심지어 버릴까 말까 고민되는 영수증들은, 다음번에 정리해줘야겠다. 기왕이면 오늘보다 조금 더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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