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서 ‘작년 오늘’을 보다 보니 2022년 12월 6일에 엄마와 대화를 나눈 기록이 있었다. 내가 엄마에게 요즘 무슨 걱정 없냐고 뭐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너 술 많이 먹는 거 말곤 별 걱정 없어.“ 라고 대답했었더라고.
그만큼 내 음주 습관은 온 가족들에게 걱정거리다. 술을 좋아하는 건 온 가족이 그렇다고 쳐도 나의 문제는 한번 취하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과음을 한다는데 있다.
대학생 때부터 혼자 서울에서 공부하고 또 일하던 나는 회사를 그만둔 것을 계기로 2016년, 서울 생활 11년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살기도 하고 부산 친구들이 많지 않기도 해서 술 먹는 횟수는 좀 줄었지만 여전히 과음하는 버릇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필름이 뚝 끊겨서 침대에서 번쩍 눈을 뜨게 되는 날이면 숙취 그리고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에 하루 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겨우 용기를 내어 전날 같이 술 먹은 사람들에게 내가 어땠는지를 묻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고 나서도, 내가 어제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며 저기로 뛰어내리면 모든 게 끝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젯밤의 나는 얼마나 최악이었을까 하는 상상만 계속해서 했다.
다음 해인 2017년 겨울, 종현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갑자기 정신과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좋아한 가수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너무 아팠고 또 무서웠다. 음주 버릇을 꼭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순간이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우울증이 심한 경우 주사도 심할 수도 있다고 했다. 우울증 때문에 나는 평소 텐션을 올려서 밝게 살다가도 술을 먹고 내면의 어둠에 내몰려서 그렇게 죽고 싶어 했던 걸까? 아무튼 나는 정신과 선생님이 처방해 준 약을 몇 년 간 먹으며 천천히 좋아졌다. 점점 잠도 잘 잤고 두통도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주사가 많이 사라졌다. 필름이 끊기더라도 죽고 싶어 하지는 않았고 단지 좀 심하게 땡깡을 부리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과음하는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는 술을 한두 잔 조금씩 마실 때도 많았다. 하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 재밌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 나는 마침내 멈추지 못하고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신 후 새벽 늦게야 겨우 집에 들어오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아빠로부터 지켜줬다. 엄마도 술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내가 과음하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의 인내심도 한계가 오는 날이 왔다.
2023년 올해 초, 술을 또 잔뜩 마셨던 어느 날 새벽 3시경에 나는 기억나지 않는 채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사람들과 놀다가 기분이 상해서 혼자 뛰쳐나왔는데 집에 못 가겠다고, 엄마더러 날 좀 데리러 가라고 했단다. 내가 잠깐 기억나는 건 로비에서 엉엉 울면서 엄마를 기다리던 순간이다. 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엄마를 만나 택시를 타고 집에 온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그 새벽에 호텔을 두어 군데 돌아다니며 딸을 찾았다. 취한 내가 호텔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이 비슷한 호텔을 갔다가 내가 없었던 것이다. 그 새벽에 잡히는 택시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는 겨우 만난 택시 기사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나에게 왔고 우는 나를 달래가면서 집에 데려왔다.
그때까진 아빠가 모르게 실드를 쳐주던 엄마가 두 손을 들었다. 엄마 혼자 감당이 안 된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내 과음이 너무 심각하고 걱정된다며 그날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아빠에게 호되고 혼이 나고 며칠에 걸쳐 부모님께 다짐에 다짐을 했지만, 나는 계속해서 술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비 오는 밤에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집에 돌아와서 아빠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발가벗고 침대에 뻗어 누워 자서 엄마가 옷을 입혀준 일도 있었다. 상담 선생님이 술 마시는 것을 기록해 보면 좋다고 해서 음주량과 필름이 끊긴 날을 언젠가부터 표시해 두었는데 결국 돌아보면 한 달에 한 번 꼴로 필름이 끊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