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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Mar 30. 2017

밥 한번 먹자

영원한 이별을 방지하는 인사말

'밥 한번 먹자'는 말이 너무 싫었다. 그 자리에서 날짜와 장소를 정해 버렸다. 나중에 정말로 연락했을 때 상대방이 놀랄 때는 통쾌할 때도 있었다. 거봐, 나한테는 그냥 인사치레 같은 거 하지 말란 말이야. 네 말에 책임을 지라고.


사람들과의 잦은 이별을 마음에서 쉽게 놓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조별 과제가 끝나거나 학기가 하나 바뀔 뿐인데도 사람들과 멀어졌다. 마음을 나누어서 주는 법을 모르는 나는 매번의 이별이 속상했다. 막상 상대방은 이별이라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더 속상했다. 매일같이 만나 사생활을 공유하던 주변인들이 계속해서 바뀌어 가는 것이 나에게는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와의 사랑을 조금씩 포기해가면서, 마음을 아끼는 법도 알아가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눈치도 늘었다. 사회생활에서의 인간관계는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매일같이 전화로 실랑이를 벌이던 고객사도 담당이 바뀌고 나면 사실은 나라는 인간이 아니라 내 회사와 소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사리 놓지 못해 서성이던 마음은 만날 사람은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다듬어졌다. 


'밥 한번 먹자'는 나도 쓰기 시작했다. 설사 다시는 서로 연락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미래의 인연을 약속하는 마음 씀씀이가 좋았다. 거짓말이어도 괜찮았다. 거짓말을 할 정도로 나라는 존재가 의미 있긴 한 거니까. '밥 한번 먹자'가 예의 바른 거짓말이 아니라 영원한 이별을 방지하는 인사말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에게라도 내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하면 결국 내 얘기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에 대해서도 다 알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기 자신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 때 나를 굳이 싫어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굳이 그 사람 말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알려줄 필요도 없다. 상대방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만큼만 그를 봐주면 되고, 보이는 만큼만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인연이 감사하고 소중하다. 내 직업과 능력 말고 내 인간 자체를 봐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마음을 열고 시간을 내주는 사람. 어차피 멀어지긴 하겠지 생각하면 억지로 매달리지 않을 것이고, 생각지 못하게 그 인연이 길어진다면 나중에 또 그 시간에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엔 내 사람 아닌 사람 구별하는 마음도 다 버려지면 좋겠다. 누구와 밥을 먹든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면서 그 사람을 이해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제 어느 순간 얼만큼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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