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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Dec 13. 2016

너, 한 대 맞는다

우리들의 두려움은 가까이에 있다.

며칠 전, 별일도 아닌 일로 한 친구와 시비가 붙었다. 그 아이는 눈을 부릅뜨며 "너, 진짜 한 대 맞는다"라고 위협했고, 나는 고개를 쳐들고 "뭐, 때려보든가!"하고 무서울 것 없다는 듯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서로 씩씩거리기만 하고 싱겁게 끝난 사건이었지만,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서야 문득 옛날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때였다. 짝지였던 남자아이와 다툼이 생겼는데, 거듭되는 위협에 때려봐, 때려봐, 했다가 정말로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 불의를 참지 못했고, 이해 안 가는 건 따져 물어야만 했고, '인생이 그런 거지 뭐 씨발'할 줄도 몰랐기 때문일까. 모든 반 아이들이 쳐다볼 정도로 한참을 퍽퍽 맞으면서, 나는 억울했고, 비참했다. 논리적인 대화로 해결하길 거부하는 그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아파도 나는 그가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발로 온 몸을 걷어차이면서도 나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항복을 강요하는 그의 폭력은 너무나도 아팠다. 결국 나는 입을 다물었다. 것봐, 까불지 말라니까. 비참했다. 두려움에 침묵한 스스로가 제일 싫었다.


워낙 말도 안 되어서 억울하지도 않았던 건 그 사건을 대하는 담임선생님의 태도였다. 여자가 잘못을 했으니 남자가 때렸겠지. 왜 맞을 짓을 했냐는 것이었다. 상황을 차근히 설명하려 했지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작은 주먹을 쥐고 어깨를 늘어뜨리며 비참함과 불의를 견뎌야만 했다.


어릴 때부터 종종 투닥거리며 몸싸움을 하던 사촌 동생에게서는 힘으로 제압당하며 죽음의 공포까지 느꼈던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보다 더 몸집이 커진 그 아이에게 나는 목을 졸리며 아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했다. 내 두 손 발은 힘없이 허공을 휘저었다. 꿈적 않는 그 아이의 손아귀에서 나는 절대 벗어날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아이가 나를 죽이려고 의도한 건 아닐 거다. 하지만 분명 나를 제압하면서 느꼈을 우월감은 구역질이 난다. 이제 까불지 못하겠지. 나는 실제로 그 뒤로 명절 때마다 그 아이를 피해 다녔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지만 실제로 나는 그 아이가 무서웠고, 그 두려움의 패배감은 정말로 오래갔다.


며칠 전에 나에게 한 대 맞을래, 위협했던 그 친구도 정말 때릴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의 폭력에 무력감을 느껴본 기억들이 있다. 그 패배감과 두려움은 남자들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퐁, 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른다.


나에게는 평생 갈 끔찍한 폭력의 기억들을 심어준 초등학교의 짝지도, 내 사촌동생도 지금은 누군가에게 자상하고 따뜻한 남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도 좋은 남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 좋은 남자들도 여자 짝지를 괴롭힌 경험들이 있을 수 있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들의 두려움과 공포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지나가는 말 한마디, 뉴스의 한 자락, 혼자 누워있는 방 밖의 어둠, 버스 안의 술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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