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윤 Nov 04. 2017

뒷담화

우린 모두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아무리 친한 친구에게도 가족, 남자, 돈 이야기 같은 속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동생과 나는 그때마다 아연해져서 그럼 대체 그게 친구야? 되물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우리가 엄마를 다독인다. 사실 엄마에게는 진짜 친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부부싸움 다음에도 아빠 욕을 하기 꺼리면서 마음을 혼자 끌어안고 힘들어하는 것은, 그걸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다. 친구에게 털어놓으면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친한 다른 친구에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거다. 나의 아픔이 남들에게 유희 거리로, 험담으로 널리 퍼질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생각해보았다. 나는 친구들이 마치 점 조직 같아서, 설사 친한 친구가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옮긴다 하더라도 내가 그 사실에 대해 알게 될 가능성이 아주 낮다. 즉 내 친구의 배신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릴 일이 없었기 때문에 별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친구가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다면 뭔가 예로 들고 싶은 사연이 있었던 거겠지. 무엇보다도 나는 나는 몇 명 없는 내 친구들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반면에 엄마의 '친구'들은 모임의 구성원들이 많다. 엄마의 고향 동창들, 동생이나 나의 중고등학교 동창 엄마들끼리의 모임, 예전 동네 사람들과의 모임. 물론 제일 친한 친구 한 명 정도는 있지만, 엄마는 그 친구조차도 다른 친구에게 엄마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한다. 


사실 그렇다. 우린 모두 다른 사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니, 걔는 그런 말을 하다니, 성격도 참 이러이러한 것 같아. 그 사람이 자꾸 생각나서 일 수도 있고, 인류에 대한 자신의 성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보통 남 이야기를 다 빼면 모여할 얘기가 별로 없지 않나? 만나는 모두와 책, 영화 취향이 비슷할 수는 없으니. 제일 궁금한 건 우리 주변 사람들 사는 이야기, 연애와 일 이야기, 사건 사고 아니겠는가. 


내가 남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남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내가 하는 그의 이야기를, 그 앞에서 직접 해도 괜찮은가? 자기 이야기하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남의 기분 살피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한번 더 생각해본다. 돌고 돌아 그 사람에게 그 이야기가 들렸다면, "그래,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어. 솔직히 우리 만났을 때 너 이야기만 한참 했잖아, 힘든가 보다, 남 배려 줄 여유가 없긴 한가 보다고 생각했었어."라고 변명할 수 있을 정도의 수위를 조절한다. 악의를 담지 않는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을 이야기한다. 남의 불행을 절대 나의 유희 거리로 여기지 않는다. 


남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말라는 글을 볼 때마다 가슴 한편이 답답해진다. 뒷담화가 뭔데? 본인이 없는데서 그 사람 이야기하는 건 전부 뒷담화인건가? 악의가 담겨있으면 뒷담화인가?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대체 무언데? 이 원죄 앞에 당당한 자, 대체 누구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욕과 칭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