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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Dec 16. 2017

치열했던 젊은 날의 일기

모두, 너무 아프지 않길 바란다

전에 다니던 회사는 세계 3-4위를 왔다 갔다 하는 미국 반도체 기업, Texas Instruments(TI)였다. 말이 4위지 메모리 반도체로 1위 하는 삼성, CPU로 2위 하는 인텔, 통신 칩으로 3위 하는 퀄컴 다음으로,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에서는 제일 큰 회사였다. 명성에 걸맞게 시스템이 어마어마해서 전 세계의 재고량, 고객처마다의 가격이나 물량 흐름 등은 물론이거니와 나중에는 전 세계의 세일즈들이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거기엔 어떤 칩들이 들어가는지 다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차피 개인이 다 입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진 과거의 실적은 시스템에 자연스레 나타나지만, 현재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 미래 매출 예측은 모두 각 세일즈들이 거래처별, 거래처의 팀별, 프로젝트 별로 일일이 기입해야만 정리가 되는 형태였다.


즉, 일이 아주 많았다. 내가 다니던 당시 신입 세일즈와 필드 엔지니어들로 60명 이상을 충원했는데, 그게 반도체 업계에선 특이한 일이었다.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회사에선 경력보단 싼 신입을 쓰려했고, 또 그만큼 누구라도 일할 수 있게 시스템을 거대하게 진화시켜 가던 시기였다. 누구든 일하는 기계로 만들어주는 TI의 시스템에는 타 반도체 회사에서도 관심이 많았고, 그야말로 반도체 회사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회사였다.


시스템 때문이었나, 분기 매출 때문이었나, 아니, 매해 변하던 Priority 관련한 회의였던 것 같다. 30명쯤 되는 우리 팀이 전부 회의실에 모였다. 일부는 앉았지만 절반 이상이 회의실이 꽉 차게 서 있었고, 나는 다른 대리급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맨 뒤 라디에이터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상무님이 뭔가 한참 말을 하고 있는데, 옆에 서 있었던 한 선배가 툭 하고 라디에이터 위로 쓰러졌다. 나는 곁눈 짓으로 보고 선배가 뭔가를 주으려고 고개를 숙인 줄로만 알았다. 사람들이 놀라는 기척에 옆을 보니, 선배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회의는 중단되었고, 119를 불렀으나 다행히 5분여 후에 선배는 정신을 차렸다. 병원 진단으로는 다행히 큰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 회의 이후 선배는 회사를 3개월 휴직하고, 영원히 회사를 떠났다. 주간 회의가 있는 월요일 새벽에는 잠이 안와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회의를 준비한다던 선배였다. 중간에 결혼을 했는데도 자꾸 살이 빠지고 얼굴이 검게 변하던 중이었다.


그 선배와 같은 기수인 한 여자 선배는 머리에 원형 탈모가 생겼다. 직속 상사였던 이사가 지독히도 일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길거리 한복판에서 성추행을 하는 또라이였다. 또 한 선배는 그다음 해, 뇌에 이상이 생겨 병원을 한참 다녔다. 다행히 지금은 모두 다 괜찮고, 잘 살고 있다. 


그때는 그들이 단순히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미국 본사와 같이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24시간 메일을 주고받았고, 급할 때는 새벽에 콘퍼런스 콜도 종종해야 했다.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도 모든 일을 할 수 있었고, 휴대폰엔 언제나 메일이 100통씩 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일은 이걸로 끝이라고 여기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대신 많은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밤 12시까지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가곤 했었다. 마음이 줄곧 일에 가 있는 그들이 쉴 때조차 제대로 쉬지 못해 병이 생긴 것이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문득 단순히 쉬는 것이 문제는 아니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자신의 인생에서 증명해야 하는 단계에 놓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나같이 일류대를 나오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상사에게든 고객에게든 욕먹는 게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죽어라 이를 악물고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 앞에선 모두 겸손했지만 조직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 순간에 내 앞에 놓인 것을 미친 듯이 이루어 내야만 하는 상황에 짓눌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 선배는 오이도에서 부모님을 도와 조개구이 집을 운영하고 있다. 부모님만 하실 때보다 매출이 2배가 올랐단다. 피아노를 아주 잘 치는 한 선배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지만 더 이상 반도체 업계에 미련이 없고, 조만간 재즈바를 차리기 위해 저녁마다 노래 연습을 한다. 한 선배는 아직 TI에 다니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 세명 다 이제는 만나면 편안해 보이고, 여유로워 보인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조금 더 먼 곳을 보면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목표가 가족의 행복일 수도 있고, 부족함 없이 돈 버는 것이 목표일 수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긴 호흡으로 먼 발자국을 천천히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로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은 경우가 많았다. 열심히 사는 것과는 별개로 여유롭게 주변과 자신을 돌볼 줄 아는 경우가 많다. 아직 무언가를 이루어보지 않았거나 건강을 상할 만큼 아파보지 않은 사람들이 가끔 불도저처럼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 조금 안쓰럽다. 아프지 않았으면, 바라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신에게 함몰되어 주변을 바라보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면 조금 기다려주는 것도 좋겠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모여 하하호호 치열했던 이야기를 서로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 아프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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