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전 회사에서 술을 자주 마셨던 여자 선배가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실 때마다 너네는 꼭 잘생긴 남자 후배들이랑만 논다며 회사 사람들이 부러움을 반쯤 담은 채 놀리곤 했는데, 맞는 말이었다. 우리 회사에는 잘생기고 수트 잘 입는 남자들이 많았고 우리는 꼰대 싫어하고 유쾌한 후배들과만 술을 마셨다. 아주 나중엔 술자리에서 커플이 둘이나 나왔으니 솔직히 이건 권위라기보단 이성끼리의 호감으로 만들어진 술자리였다.
하지만 정말로,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선배의 권위가 통한 적이 없었을까?
권위는 교묘하게 작용한다. 1차가 끝나고 한잔 더 하자는 유부남 부장님을 따라갔던 것은 고가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왕따를 당할까 봐 와 같은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평소에도 젠틀하고 친절한 부장님이었으므로 따로 술 마시자고 할 정도로 나에게 업무적으로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나 보다, 했을 뿐이다. 남자들끼리는 종종 그러니까. 나보다 10년은 더 사회생활을 한 선배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듣고 싶어서 나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부장님을 따라갔다. 유부남인 부장님이 식당 복도에서 나에게 키스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스스럼없이 친한 선후배 사이일수록, 자주 상대하는 상사일수록 권위는 은근하다. 밤중에 카톡 하는 것도 개인 사생활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몸매나 외모 품평을 하는 것도, 다 우리가 친해서고 후배를 위해서다. 상대방은 조금씩 불쾌해지고 불안해지겠지만 권위를 가진 자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느슨해진다.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래도 되니까. 상대방이 표현을 하지 않으니까, 몰라서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아주 조금씩 심해진다. 배려할 필요가 없는 상사는 무신경하게 밤중에 비서를 방으로 불러들이고 표현하지 않는 거부를 애정으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그것은 상사 입장에서 로맨틱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회사에 그대로 남아 40대의 여자 상사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젊은 남자 후배들에게 술 마시러 가자고 권했을 것이고, 거절하는 사람들을 싫어했을 것이다. 십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조금씩 조금씩 무신경해져서 그들의 불쾌함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깨동무나 무릎을 만지는 것 정도는 친하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혼자 연애와 성추행을 구분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는 자기검열은 피곤하다. 그 피곤의 피해는 아래로 향한다. 성희롱의 가해자들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무신경하고 피곤한 보통 사람들이다. 가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