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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Nov 05. 2018

밝을 소에 진실될 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솔직할 수는 없다

밝을 소에 진실될 윤, 소윤이라는 이름을 내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름 때문인지 나는 남들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누굴 좋아한다던가, 시험에서 몇 점을 맞았다던가, 부모님들의 사소한 싸움까지 나는 뭐든 내 이야기에 경계선이 없었다. 솔직하다고 생각하기보단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또 나라는 사람을 누구에게든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조그만 일이 있어도 흥분한 채 친구들에게 뛰어가서 조잘조잘거리는 거리던 고등학생은 성격 그대로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와 달리 열린 공간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나의 벽 없음이 다른 이들의 마음을 열기에 좋은 수단이 된다는 것이었다. 20대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방법 중 가장 간단한 주제가 연애 상담이었다. 그때는 누굴 만나든 으레 마음을 채우고 있는 이가 있기 마련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그 사람에 대해 자랑하고 싶고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인 경우가 많다. 내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나 지나간 연애에 대해 털어놓으면 대화는 금방 불이 붙었고 상대방에게서 ‘사실은’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는 이미 내 친구가 되었다.


사람을 사귀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 그대로 밝고 솔직한 내 성격을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자만했다.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해 보였다. 그래서 아무리 내 이야기를 털어놔도 자기 마음을 열지 않는 친구를 싫어했다. 가식적이고 내숭 떠는 것이라고 또 그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니까 나는 살아오는 내내 솔직함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친 사회에 나와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상사들에게 선을 넘나드는 농담과 충고를 하면서 내가 친화력 있고 자신감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운영위원회에도 당당하게 들어갔다.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의 욕구와 감정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표현하는 내가 멋지다고 착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긴 시간에 걸쳐 아주 천천히 깨달아갔다. 내가 명색뿐인 운영위원회에서 아무리 뭔가 바꾸려 해도 결국 나는 사장님에게 눈치 보는 일개 대리일 뿐이었고 그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고 또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어쨌든 잘 보일 사람이 없어졌다. 회사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둔 지 일 년이 넘어가고는 거의 연락이 끊겼고 손님들은 그저 카페를 스쳐 지나갔다. 정말 소수의 친구들만이 옆에 남았고 나는 점점 깨달아갔다. 나는 나에게 솔직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만화는 실력을 핑계 대고 진작 그만두었고 공무원이든 회사든  뭔가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도전했지만 결국 나는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솔직할 수는 없었다. 내 모든 자만과 잘난 척이 부끄러워서 눈물이 났다.


혼자 있는 시간에 SNS에 아무거나 내뱉기 시작했다. 정리된 생각을 쓰기도 하고 잘 찍은 사진을 포스팅하기도 했다. 나를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지자 나는 생각나는 대로 똥 이야기도 쓰고 섹스 이야기도 썼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몰라도 여하튼 나는 여전히 벽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똥 이야기도 섹스 이야기도 전혀 부끄럽지 않아서 그냥 그것들을 쓰고 그렸다. 내가 솔직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좋아서 올린 것들 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턱대고 쓰고 그리면서 나는 솔직하고 또 그것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나의 혼란은 어떤 사람은 내가 쓰는 똥과 섹스 이야기를 싫어해서 나를 떠난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였는데 생각해보면 역시 또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나는 무엇을 위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내 솔직함으로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솔직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되돌아 싫어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만 해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나는 혼란에 빠져버렸다.


오랫동안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 했다. 결국 지금에 와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걸 알고 말았다.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몰라서 나는 아무거나 써왔던 것일까. 오랜 시간 머릿속을 맴돌던 이야기 하나는 겉멋 든 주제뿐인 것만 같고 내가 그려내는 모든 건 시시하기만 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지금의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놓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지, 아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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