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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Nov 06. 2018

개 조심

나는 개가 싫어

네가 키우는 강아지 사진 좀 보라고? 예쁘지 않냐고? 오늘은 내 이야기를 먼저 들어줘. 난 사실 개를 못 만지거든, 무서워서. 실제로 다가와 나를 물 수 있는 개는 영화에 나오는 비디오 달걀귀신보다도 더 무서워. 근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싫어한다는 말 때문에 네가 나를 잔인한 사람으로, 차가운 사람으로 여길까 그게 더 두려워. 10년 전쯤 어느 잡지에서 외국의 남자 모델들이 공통적으로 말했던 이상형의 조건이 '개를 사랑하는 여자'인걸 보고 울적했던 적이 있어. 왜냐면 인터뷰이 중에 내가 좋아했던 남자 배우도 있었거든. 아, 가십걸의 남주였던 것 같아. 암튼 엄청 억울했어. 나도 따뜻한 사람인데! 그깟 기준 하나로 인간성을 평가받는 것 같아서 분하더라. 뭐, 어차피 그 모델의 여자가 될 일은 없었겠지만.

어느 정도로 개가 무섭냐면, 절대 안 문다고 하는 개도 나를 보면 와로아로아뢍뢍뢍뢀!!!! 우르르르러어러러렁!! 이러면서 달려들어. 그게 서열때문이래. 자기 앞에서 겁먹은 걸 알면 그 개는 나를 자기 밑의 서열이라 여기고 개무시를 하는 거지. 작년 내내 과외하러 갔던 집은 내가 갈 때마다 난리를 치렀어. 분명히 순하고 착한 개라고 그랬는데 나한텐 아니더라고.

개가 무섭다는 말을 꺼내고 나면 마치 핑계를 대듯이 꼭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어. 4살짜리 동생과 8살짜리 언니가 어느 시골 식당 뒷동산서 두 마리의 개한테 쫓기는 이야기야. 8살 언니의 눈에 그 개들은 덩치가 자기보다 세 배는 더 큰 대형 진돗개들로 보였어. 잔뜩 겁을 먹은 상태에서 동생의 손을 꼭 잡고 도망가는데, 한참 어린 동생이 험한 산길을 언니처럼 뛰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아. 8살 언니는 공포감이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도망가는데, 응, 사실 내 이야기야. 드라마의 한 장면 같지 않니? 나는 아직도 동생 손을 놓는 내 손의 감촉이 생생한 것만 같아. 가족들은 모두 잊어버린 이 이야기를 혼자 떠올릴 때마다 나는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눈물이 나. 동생은 엉덩이를 물렸지만 멀쩡했고 심지어 지금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할 만큼 동물을 좋아해. 엉덩이를 물려놓고 새 청바지가 찢어졌다고 엉엉 운 걸 보면 동생은 정말 괜찮았던 거지. 부모님도 식당 쪽에 따지지 않고 넘어간 걸로 봐서 그렇게 큰 개들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난 아직도 진돗개 두 마리가 나의 어리고 작았던 시야에 꽉 차게 침을 막 흘리면서 쫓아오던 게 눈에 선한데.

근데 내가 꼭 이런 이야기를 꺼내야 개를 싫어하는 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매번 내 트라우마를 이해시켜야 하는 게 지겨워. 개를 싫어하지 않고 무서워하는 것이어야 나도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는 걸까? 나는 바닥에 기어 다니는 온갖 해양 동식물들을 구경하러 전 세계의 바다를 헤매며 다이빙을 하는데. 인간이라는 종족이 만들어놓은 철의 도시를 보면서 증오하기도 하고 동물들을 잔인하게 사육하는 모든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도 생각해. 단지 인간과 다른 그들의 의사 표현 방식과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가까이 가는 게 무서울 뿐이야. 아무리 예뻐서 손을 내밀어도 그들에게는 애정표현이 아닐 수 있다는 걸 나는 너무 일찍 알아버렸으니까. 그전에 공포를 느껴버렸을 뿐이야.

네가 개를 키우고, 고양이를 키우는 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한 생명을 책임지는 건 그들에겐 한 우주를 만들어주는 거니까. 인간 외에 나의 온기와 고단함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부러워. 고양이 사진들이 올라올 때마다 귀여워, 이뻐, 하는 너의 취향을 진심으로 존중해. 하지만 그들의 표정을 모르는 나는, 글쎄, 잘 모르겠어. 이게 정말 귀엽지 않냐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너의 그 표정이야말로 나에겐 폭력적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주면 좋겠어. 트라우마 이야기 없이 살아가고 싶어, 따뜻한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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