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낯선 해외 도시로 떠나는 비행기, 고향에 가기 위해 탄 기차의 옆자리, 지인의 결혼식, 심지어 매일매일의 출퇴근길에서도 우리는 은근 새로운 인연을 기대한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니까. 완전 마음에 드는 훈남이 전화번호를 물어본다거나, 누군가 버스에서 허둥지둥 따라 내리면서 나의 팔을 붙잡는다거나. 혹은 기분 나쁜 일로 시작된 인연도 괜찮다. 커피를 쏟는다거나 발을 밟아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행복한 인연으로 결말을 맺게 될 거니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도 있었다. 비 오는 날 합승했던 택시 안의 남자가 다시 보니 꽤 훈남이었던데다 나에게 번호를 물어봤던 적도 있고, 매일같이 가던 카페의 바리스타와 명함을 주고받고 실제로 짧게나마 연애를 했던 달콤한 기억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29년 일생에 딱 두세 번 있을 정도로 그런 일은 흔하지 않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볼 정도의 엄청난 미인이면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은 매번 설렌다. 매일매일의 출근길에도 고민하게 된다. ‘정말 혹시’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인연 때문에 나는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어야 하나. 내가 맘에 들었다가도 오늘 머리를 안 감고 나온 것 때문에 말을 걸지 않으면 어쩌지, 시간이 없어 대충 피부 화장만 하고 뛰쳐나온 출근길에 만난 인연이, 아이라인을 안 그려 인상이 흐릿해진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떡하지?
20대도 어느덧 9년이 지났고, 아무리 간절하게 보고 싶은 끝난 인연도 영화처럼 길에서 마주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쯤 깨달을 나이가 됐다. 귀찮음과 기대감 사이에서 아이라인 문신이나 샴푸 스프레이(떡진 게 감쪽같이 사라진다, 심지어 향이 나는 제품도 있다) 등에 기댈 수 있는 경제력이 생기는 나이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기차를 탈 때마다 아주 조금 기대한다. 옆 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이왕이면 미혼인 젊은 남자이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