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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윤 Nov 24. 2017

사랑한다는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고 쓰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드라마를 보면 영 재미가 없었다. 다들 좋다는 '연애시대'를 보면서 답답하기만 했다. 사랑하잖아, 그냥 말해! 상대방의 작은 신호 하나로 겨우 결심한 니 마음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못 먹어도 고! 그냥 둘 다 마음을 말하기만 하면 되는 건데. 오해와 상처가 뒤섞이는 티브이 드라마들은 죄다 고구마 같았다.


턱 밑까지 올라오는 좋아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먼저 터지는 웃음소리. 두 손을 꼭 쥐고서야 나오는, 두 눈을 질끈 감는 용기. 상대방의 눈만 바라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 눈을 마주 바라볼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에 앞서서, 머릿속에 맴도는 친구라도 될걸 그랬어, 라는 노래, 우리의 미래, 친구들, 자꾸만 등 뒤에서 좇아오는 해야 할 일 들. 


이런 귀여운 고민들은 사실 시작이라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사랑을 일상으로 만드는 데는 희생과 고통과 괴로움이 따른다. 그걸 알게 되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희생은 보통 한쪽이 도맡게 된다는 가장 끔찍한 사실은 여태껏 단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차라리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쉬울 때가 있었다. 살아갈수록,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나의 시간은 공고해진다. 내 시간을, 일상을 너에게 내어주는 게 힘들어진다. 들뜨는 내 마음이 싫다. 들뜨는 상대방의 마음이 싫을 때도 있다. 설레는 마음은 쌍방향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반드시 되돌아와야 한다. 그 욕심은 버리기 쉽지 않다. 상대방의 실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거듭된 실패들로 만들어진 공식들을 그와 자꾸 비교한다. 겁을 먹는다. 언제든 끝이 날 수 있는 이 사랑은 작은 신호에도 불안하다. 


그 순간들을 견디지 못해 헤어지는 연인들을 본다. 드라마에서는 꼭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나니까 드라마다. 멀리 돌고 돌아왔다며 서로 꼭 껴안는 그들을 보며 어떤 불행이 찾아와야 그가 나를 다시 생각해줄까 계산한다. 힘들어하는 날 보며 미안하다고 후회하는 그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버전으로, 축복받는 결혼식을 올린 뒤 그 불안한 감정에서 눈 돌리기 위해 현실에 함몰되는 부부들을 본다. 언제까지고 내 마음에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이 사람이다. 상대방의 상처에는 쉽게 독해진다. 독해진 사람들이 주변에 드글거린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고 쓰려고 이 글을 시작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현실쯤 극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믿었다. 수많은 이별 이유를 요약하면 결국 좋아하는 마음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사랑받는 기분만큼, 사랑하는 기분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걸 안다. 소중한 이 기적을 영원한 행복으로 만드는 건 서로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이제는 잘 모르겠다. 정말인가?


친구 같은 사랑. 눈빛만 봐도 먹고 싶은 것을 맞추는 사람. 눈빛이 따뜻한 사람. 손이 부드러운 사람.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그곳에 있을 것을 아는 사람. 필요한 것을 필요한 순간에 건네주는 사람. 그를 위해서라면 나머지 온 세계의 모든 사랑은 다 버려도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 


나는 이제 이곳과 저곳을 건너는 다리를 잃어버렸다. 멀리서는 익숙해 보였던 그 다리는 사실 내 힘으로 건넌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용히 손을 잡아줬던 그 사람이 만든 다리였나 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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